한을 품고 죽은 자가 되살아나 산 자를 공격하는 이야기는 시대를 막론하고 세계 각지에서 접할 수 있는 전형적 공포물이다. 한국에서도 ‘전설의 고향’에서 ‘여고괴담’까지 보는 이의 뒷골을 서늘하게 하고, 눈을 질끈 감게 하는 작품들이 대부분 이 같은 전개를 따라간다. 결국 공포물이 성공하려면 뻔한 설정을 뻔하지 않게 풀어내야 한다. 쉬워 보이지만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연상호 작가와 김용완 감독이 이처럼 어려운 과제를 해냈다. 두 사람은 오는 28일 개봉하는 영화 ‘방법 : 재차의’에서 어느새 뻔한 존재가 돼버린 ‘K 좀비’의 틀을 깨고 새로운 기괴함과 공포를 관객들에게 선사한다.
재차의(在此矣)는 조선 중기 고서 ‘용재총화’에 등장하는 설화 속 요괴다. 손과 발이 검은색이고 움직임은 부자연스럽지만 사람의 말을 그대로 할 줄 안다고 기록돼 있다. 하지만 영화 속 재차의는 한국 설화 속 원형과는 다르다. 아시아 지역 곳곳에 자리한 주술 문화가 접목됐고, 현대적 방식으로 재해석, 재창조 됐다.
영화는 제목에서 알 수 있다시피 지난 해 tvN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방법(謗法)’의 확장판이다. 하지만 드라마를 보지 않은 관객도 영화를 따라가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다. 영화는 기괴한 살인 사건으로 시작된다. 어느 날 어둠 속에서 한 남자가 살해되고, 현장에서 용의자도 죽은 채 발견 된다. 경찰의 신원 파악 결과 용의자는 이미 3개월 전에 죽은 자다. 즉, 시체가 사람을 죽인 사건이 발생한 것이다. 경찰이 혼란에 빠진 가운데 미스터리를 추적하는 기자 임진희(엄지원)는 살인 사건의 진범이라 주장하는 자로부터 인터뷰를 하고 싶다는 연락을 받는다. 범인은 유튜브 생중계로 진행된 임진희와의 인터뷰에서 ‘재차의’가 앞으로 살인 세 번 더 할 것이라고 예고한다.
영화의 묘미는 좀비와 차별화되는 재차의의 특징이다. 좀비처럼 죽은 후 되살아나 움직이기는 하지만 좀비보다 더 세고, 더 빠르고, 더 영리하다. 좀비가 살아 움직이는 사람만 보면 무차별적으로 달려드는 것과 달리 재차의는 주술에 따라 공격 행위를 한다. 목표물을 쫓아가는 과정에서 차를 운전하기도 한다. 주술의 힘으로 산 사람처럼 위장할 수 있다는 점도 다르다. 때로는 집단화 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도 한다. 재차의들의 집단적 움직임, 특히 단체 추격 장면은 공포감을 높이면서 짜릿한 액션 쾌감을 선사한다. 이들이 동시에 움직일 때 압도적 느낌을 극대화 하기 위해 팔 동작에서 보폭까지 치밀하게 계산했다는 게 감독의 설명이다. 재차의의 몸 놀림과 분장도 기괴함 그 자체다. 시각적 불쾌함이 공포감과 맞물려 기이한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후반부에는 드라마에서 임진희 캐릭터와 호흡을 맞췄던 방법사 백소진(정지소)이 등장해 이야기를 새로운 방향으로 끌고 간다. 문제 해결 과정은 평범한 권선징악 방식이다. 하지만 오늘을 사는 우리가 알면서도 애써 외면하는 사회적 문제를 관객 앞에 갖다 놓았다는 점은 의미 있다. 러닝 타임 109분. 15세 관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