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지구용]웨딩드레스, 하마터면 버릴 뻔 했어


※환경을 생각하는 뉴스레터 ‘지구용’에 게재된 기사입니다.[구독링크]

쿼카 에디터는 올 봄에 결혼식을 올렸는데요. 결혼식 하면 반짝반짝 빛나는 웨딩드레스를 빼놓을 수 없죠. 그런데 이 웨딩드레스, 네다섯번 정도 입고 나면 가치가 떨어져 더 이상 대여하지 못한다고 해요. 드레스샵을 꽉 채운 신상 드레스의 전성기는 길어야 3개월 정도인 거죠. 몇 번 입고 버려지는 웨딩드레스가 참 아깝다고 생각하던 차에 업사이클링 스타트업이 있다고 해서 대구로 출동했어요.




웨딩드레스로 만든 버킷백(왼쪽)과 파우치(오른쪽). 각기 다른 드레스와 천으로 만들다보니 제품의 패턴은 다 달라요./출처=코햄체웨딩드레스로 만든 버킷백(왼쪽)과 파우치(오른쪽). 각기 다른 드레스와 천으로 만들다보니 제품의 패턴은 다 달라요./출처=코햄체




웨딩드레스 업사이클링 스타트업 '코햄체'의 박소영 대표님은 텍스타일디자인과 재학 시절 원단에 대해 공부하다가 우연히 웨딩드레스 소재를 접하게 됐다고 해요. 특히 한 해에 버려지는 웨딩드레스만 약 170만 벌에 달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충격을 받았대요.

웨딩드레스는 합성섬유 제품이 많아요. 고급 소재인 실크로 만들면 제작 단가가 상당히 비싸지기 때문이에요. 합성섬유 드레스의 주원료는 석유라서 분해되는데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린다고. 결국 환경을 오염시키는 거죠.

박 대표님은 2019년 드레스숍과 사진관 등에서 버려지는 웨딩드레스를 사들여 가방, 파우치 등으로 제작하기 시작했어요. 창업 초기엔 주변의 우려도 적지 않았다고 해요. 버려지는 웨딩드레스로 새로운 제품을 만들기 쉽지 않은 데다 사업성도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많았대요.

하지만 환경에 관심을 갖는 분들이 많아지면서 코햄체 제품에 대한 수요도 점점 늘었어요. 올해는 6개월 만에 웨딩드레스 60여벌 정도를 업사이클링 했대요. 특히 장롱 깊숙한 곳에 보관하던 본인의 웨딩드레스로 직접 주문제작을 요청하는 분들이 최근 늘었다고. 추억이 재탄생하게 돕는다는 점에서 아주 뿌듯하시다 해요. 웨딩드레스의 자투리 천과 비즈 장식도 버리는 법 없이 액세서리로 만드신대요. 머리를 묶는 곱창 밴드, 귀걸이가 그 결과물.

제주 해녀복으로 만든 코햄체 텀블러백과 파우치(왼쪽). 그리고 해녀복으로 만든 멍게, 현무암을 더한 에어팟 케이스.제주 해녀복으로 만든 코햄체 텀블러백과 파우치(왼쪽). 그리고 해녀복으로 만든 멍게, 현무암을 더한 에어팟 케이스.



코햄체는 웨딩드레스 외에도 새로운 업사이클링 소재를 찾는 데 집중했어요. 고민 끝에 찾아낸 소재는 바로 해녀복! 사실 전통 해녀복은 한복 원단으로 만들어져 지금보다는 훨씬 친환경적이었어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합성 소재로 바뀌게 된 것이죠.



박 대표님은 제주도 해녀분들이 모여사는 마을로 내려가 해녀 할머니들을 직접 뵙고 업사이클링의 취지를 설명했어요(해녀복은 해녀들의 재산이라 폐해녀복조차 구하기가 너무 어렵다고). 20대 육지 청년을 경계하던 할머니들도 주기적으로 마을을 찾아오는 젊은 대표의 집념과 패기에 놀라 옷장 속에 보관하던 입지 않는 해녀복을 꺼내주셨대요.

코햄체는 이렇게 귀하게 얻은 해녀복으로 파우치와 텀블러 가방을 만들었어요. 고무 소재를 살려 에어팟 케이스와 키링 등도 제작하기 시작했고 인기는 뜨거웠어요. 대기업까지 해녀복 업사이클링 제품에 관심을 갖고 코햄체에 연락을 하던 그 시기, 코로나라는 생각지도 못한 사태가 터졌어요. 연세가 많으신 할머니들의 건강을 걱정한 박 대표님이 제주에 못 가게 됐고, 해녀복 수급도 멈춘 거죠.

해녀복 업사이클링은 잠정 중단이지만, 코햄체는 해녀복을 구하는 과정에서 해녀마을에서 듣게 된 해녀의 역사와 전통을 담은 콘텐츠를 내세워 펀딩을 준비중이래요. 우리의 살아있는 역사인 해녀들의 생태계가 잘 보존되길 바란다고.

웨딩드레스로 만든 제품을 설명하고 있는 박소영 대표님. 회사 규모가 커진만큼 조만간 새로운 공간으로 장소를 옮겨 업사이클링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갈 거라고.웨딩드레스로 만든 제품을 설명하고 있는 박소영 대표님. 회사 규모가 커진만큼 조만간 새로운 공간으로 장소를 옮겨 업사이클링에 대한 고민을 이어나갈 거라고.


어느덧 창업 3년 차인 박 대표님은 또 다른 고민에 맞닥뜨렸다고 해요. 버려지는 소재를 재활용하는 데 집중해왔는데 재탄생한 제품들도 언젠가 버려질 것이라고 생각하니 '이것이 진정한 환경보호일까'라는 생각이 든다고. 지금 당장 묻어도 200년 동안 썩지 않을 제품을 재활용하는 것이니까 그래도 환경에는 더 낫다고 위안을 삼지만, 근본적인 고민은 해결되지 않고 있다고 해요.

그럼에도 멀쩡한 제품이 더 이상 필요 없다는 이유로 버려지는 일을 최소화해야 한다는 의지는 여전하다고. 더 많은 소비자들이 업사이클링을 경험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올 하반기 업사이클링 행사를 기획 중이래요. 현장에서 버려지는 소파를 해체한 다음, 소파에서 나온 가죽으로 방문객들이 직접 카드 지갑을 만들어 보는 등 업사이클링 체험에 초점을 맞출 거라고. 더 많은 소비자들이 업사이클링을 경험하게 하고 업사이클링 인식을 높이는 게 박 대표님과 코햄체의 목표라고 하네요.

팀지구용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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