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속가능한 자본주의’가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글로벌 화두로 부상한 가운데, 아시아 지역 소비자들의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에 대한 관심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
90개국에 포진한 세계 정상의 시장조사 기업 칸타(KANTAR)는 한국을 포함한 아시아 9개국을 대상으로 진행한 ‘칸타 아시아 지속가능성 기초 연구’ 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아시아 소비자는 지속가능한 소비에 지갑을 열 준비가 돼 있으나 기업은 아직 준비되지 않은 상태인 것으로 진단됐다고 29일 밝혔다.
‘지속가능성’은 코로나19 팬데믹이 촉발한 사회·경제적 변화를 조망하는 ‘칸타 2021 뉴노멀 웨비나’ 시리즈의 마지막 주제로, 이번 조사는 지난 5월 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베트남, 인도, 일본 등 아시아 9개국 18세 이상 소비자 9,548명을 대상으로 진행됐다.
이번 조사 결과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과거 상대적으로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낮았던 아시아 소비자가 코로나19 팬데믹 시기를 거치면서 지속가능성을 브랜드를 선택하는 새로운 기준으로 인식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좋은 일을 하는 기업에 시간과 돈을 쓸 준비가 되어 있다’는 항목에 아시아 9개국 소비자의 58%가 동의했으며, ‘나는 어떤 제품·서비스가 환경 또는 사회에 미치는 영향으로 인해 구매를 중단한 적이 있다’는 항목에 아시아 소비자의 53%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또한 아시아 소비자의 63%가 ‘지속가능성의 책임은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생산자)에게 있다’고 응답했다.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기업에게 있어 지속가능성은 이제 선택이 아닌 필수이며, ‘미래의 일’(Potential)이 아닌 ‘지금 당장 해야 할 일’(Must-Do Now)이 되었음을 의미한다. 하지만 지난해 하반기 60개국 약 4,500명의 마케팅 담당자를 대상으로 진행한 ‘칸타 글로벌 콤파스’ 조사 결과에 의하면, ‘사회 지원에 더 많은 역할을 하려 한다’는 항목에 응답자의 단 7%만이 ‘그렇다’고 응답했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소비자의 기대수준은 높은 반면, 기업의 준비는 턱없이 부족한 상황으로 판단된다.
아시아 소비자는 다양한 지속가능성 이슈 중 특히 ‘환경’ 이슈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조사 전반에서 아시아 소비자의 관심은 일상생활 및 생존과 직결되는 이슈에 집중되는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환경 이슈가 아시아 소비자의 삶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된다. 실제로, 전체 응답자의 58%가 ‘환경 문제로 인해 개인적으로 영향을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아시아 소비자의 이 같은 경향성은 다른 질문에 대한 응답에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유엔(UN)이 선정한 지속가능발전목표(SDGs; Sustainable Development Goals) 17개 영역 중 아시아 소비자는 빈곤퇴치, 기아 해소, 보건 증진, 물과 위생 관리, 기후변화 대응, 해양자원 보존, 육상생물과의 공존 등 환경과 관련한 7개 영역에 가장 높은 관심을 보였다. 반면, 교육 보장, 성평등 달성, 불평등 해소, 지속가능도시 구축, 평화로운 사회 증진과 제도 구축 등 사회적 가치에 대한 관심은 상대적으로 낮은 수준에 머물렀다.
지속가능한 지구의 미래에 영향을 미치는 21개의 이슈를 제시하고 그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으라는 질문에서도 수질 오염, 극단적 기상현상, 대기오염, 탄소 및 온실가스 배출, 물 부족, 삼림 벌채 등 환경 이슈가 1~6위를 차지, 빈곤·기아(7위), 의료·예방접종(8위), 질병·열악한 위생(9위)을 앞섰다.
같은 환경 이슈여도 나라마다 세부 관심사의 우선순위에는 차이가 있었다. 경제발전 수준이 낮을수록 생존과 직결되는 이슈에, 부유할수록 개념적 이슈에 더 관심을 갖는 것으로 드러났다. 인도·베트남·말레이시아·싱가포르 소비자는 ‘수질 오염’, 일본·필리핀은 ‘기상 이변’, 태국은 ‘대기 오염’, 인도네시아는 ‘삼림 벌채’에 가장 관심이 높았다. 한국 소비자가 가장 중요하게 꼽은 것은 ‘탄소 및 온실가스 배출’이었다. 2020년 앞서 조사를 진행한 중국과 호주의 경우, 중국은 ‘대기 오염’, 호주는 ‘육지의 생물다양성 상실’에 가장 관심이 높았다.
하지만 대다수 아시아 소비자가 지속가능소비에 대해 긍정적이고 열린 생각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아직 적극적인 ‘실행’으로 이어지지는 않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지속가능소비의 실천을 방해하는 3대 요소은 ‘비용’(Cost), ‘정보접근성’(Relevance), ‘편의성’(Convenience)으로 꼽혔다. 특히, ‘귀찮게 중고로 구매하기보다는 세 재품을 구매한다’(응답율 아시아 70%, 한국 65%), ‘귀찮게 가게에 리필 용기를 가지고 가기보다는 포장된 제품을 사용한다’(아시아 68%, 한국 63%), ‘공유나 렌트보다는 내가 소유한 차를 이용한다’(아시아 58%, 한국55%) 등 편의성 부족을 원인으로 꼽는 소비자가 많았다.
따라서 기업은 지속가능성을 위한 노력 그 자체만으로는 부족하고, 소비자의 ‘지속가능성 여정’(Sustainability Journey)의 동반자가 되어 지속가능소비를 적극적으로 이끌어내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다. 성장은 희귀하면서 모두가 갈망하는 가치를 제공하는 것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속가능성의 경제적·브랜드적 가치는 매우 높다. 세계경제포럼(World Economic Forum 2019)과 서큘래러티갭 리포트(Circularity Gap Report 2020)에 따르면, 2030년까지 동남아시아를 친환경화할 경우 예상되는 경제수익이 무려 1조 달러에 달할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세계 최대 규모의 브랜드 자산평가 플랫폼인 ‘칸타 브랜드Z’의 2006년도와 2018년도 글로벌 Top100 브랜드의 브랜드 파워 성장률을 비교 분석한 결과, ‘지속가능성에 대한 브랜드 목적’이 약한 그룹은 12년간 70% 성장에 그친 반면, 평균 그룹은 86%, 강한 그룹은 175%나 성장한 것으로 집계됐다.
이번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최근 <지속가능성: 무엇이 중요하고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라는 주제의 웨비나를 진행한 칸타코리아 지속가능성 부문 리더 강승용 상무는 “지금은 사회와 공동체에 미치는 긍정적인 영향에서 성장의 기회를 찾아야 하는 트랜스포메이션의 시대”라면서, “지속가능성을 번거로운 규제나 비용 이슈로 볼 것이 아니라, 브랜드와 비즈니스 관점에서 새로운 기회를 창출하는 성장 플랫폼으로 인식하고 적극 활용하는 기업만이 뉴노멀 시대를 선도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지속가능성 전략의 수립은 ‘브랜드 목적’과 ‘지속가능성 이슈’ 사이의 적합성을 찾는 작업부터 시작해야 한다”라며, “같은 아시아 지역이라 하더라도 나라에 따라 소비자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지속가능성 이슈의 우선순위가 다르기 때문에 시장 맥락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