뺑소니 혐의로 기소된 운전자가 사고 당시 뇌전증으로 인한 의식 소실로 인해 사고를 낸 줄 몰랐다고 주장해 무죄를 선고 받았다.
법원 등에 따르면 이 사건 피고인 A씨는 지난 2019년 4월 10일 오전 6시 45분께 안산에서 승용차를 운전하다가 앞서 달리던 B씨의 차량 뒷부분을 들이받는 사고를 냈다. 후미를 받힌 B씨 차량은 중심을 잃고 중앙선을 넘었다가 다시 오른쪽으로 회전했고, 결국 원래 진행하던 방향 도로의 2차로 옆 추락 방지 시설물과 충돌한 뒤에야 멈춰 섰다. 당시 날씨는 맑아 시야가 밝은 상태였고, 누구나 들을 수 있을 정도의 큰 소리가 났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사고로 B씨는 전치 3주의 부상을 입었으며, 피해 차량은 850만원 상당의 수리비가 들 정도로 손상됐다. 그러나 A씨는 사고를 낸 후 아무런 조처 없이 그대로 회사에 출근했고, 약 3시간 뒤 경찰에 출석 통보를 받게 됐다. A씨는 경찰조사에서 “사고가 난 것을 몰랐다”는 취지로 진술했다. 음주 측정 결과 음주 수치는 나오지 않았다.
혐의를 부인하던 A씨는 같은 달 23일 병원에서 뇌 MRI 등 검사를 받고 “4∼5개월 전부터 1분 이내로 4∼5차례 의식 소실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검사에서는 정상 소견이 나왔지만, 병원 측은 A씨에게 뇌전증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약물을 처방했고, 그로부터 6개월간 진료를 받아온 A씨는 같은 해 9월 뇌전증 진단을 받았다.
이후 뺑소니 혐의로 법정에 선 A씨 측은 “(사고 당시) 뇌전증 증세 중 하나인 의식 소실로 교통사고를 인식하지 못한 것일 뿐, 도주의 고의가 없었다”고 변론했고, 1·2심 법원 모두 A씨 측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수원고법 형사2부(김경란 부장판사)는 최근 도로교통법 위반(사고후 미조치) 혐의로 기소된 A씨에게 원심과 같이 무죄를 선고했다.
재판부는 “병원에서 한 뇌파 검사는 20∼30분 정도의 짧은 시간에 이뤄진 것에 불과해 해당 검사에서 이상 징후가 발견되지 않았다고 해서 뇌전증이 없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것이 법원 감정 촉탁의 결과”라고 판시했다. 이어 “피고인이 교통사고를 일으킬 당시 이를 인지했다는 증거가 없다면 설령 유죄의 의심이 있더라도 피고인의 이익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