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궁(神弓)의 새 계보를 쓴 안산(20·광주여대). 그는 어쩌면 생애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인터넷상의 소모적인 논쟁 탓에 흔들릴 뻔했다. 2020 도쿄 올림픽 양궁 혼성전과 여자 단체전에서 내리 금메달을 딴 뒤로 국내에서 때아닌 ‘페미니스트(여성주의자) 논란’이 일었기 때문이다. 짧은 머리 스타일과 여대에 다닌다는 이유로 극성 페미니스트 아니냐는 억지스러운 의심이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를 통해 돌면서부터다.
영국 BBC의 한국 특파원은 “이번 사태는 자신들의 이상에 들어맞지 않는 여성을 공격하는 소수의 목소리에 의한 것이다. 어떤 이유인지 한국에서 ‘페미니즘’은 더러운 단어가 돼버렸다”고 지적했다.
생각지도 않게 논란의 중심에 서버린 안산이 할 수 있는 일은 묵묵히 활 시위를 당기는 것뿐이었다. 30일 일본 도쿄의 유메노시마 공원 양궁장에서 열린 대회 양궁 여자 개인전 결승. 안산이 옐레나 오시포바(러시아올림픽위원회)를 6 대 5(28 대 28, 30 대 29, 27 대 28, 27 대 29, 29 대 27 <10 대 8>)로 이겼다. 오시포바는 이날 8강에서 강채영(25·현대모비스)을 7 대 1로 누르고 올라온 선수다.
한 발로 금메달을 결정하는 슛오프(연장). 안산은 지름 12.2㎝의 10점 라인 바로 안쪽에 화살을 꽂았다. 이어 쏜 오시포바의 화살이 8점으로 가면서 숨 막히는 승부가 마무리됐다. 안산은 결승전 첫 발에 8점으로 삐끗했지만 두 번째 발부터 5발 연속 10점을 쐈다. 이어 만만찮은 오시포바의 추격에 연장까지 갔는데, 앞서 4강에서도 슛오프 승부를 경험한 안산이 승리를 가져갔다.
이번 대회를 통해 혼성전이 처음 도입돼 안산은 올림픽 양궁 사상 최초의 3관왕이 됐다. 한국 스포츠 사상 올림픽 최다관왕 타이 기록(쇼트트랙 안현수·진선유)도 썼다. 하계 올림픽 한국 선수로는 최초의 단일 올림픽 3관왕이다. 안산은 정부 포상금 1억 5,750만 원과 양궁협회 포상금 5억 원, 국민체육진흥공단의 연금 중 일시금 9,500만 원을 더해 약 7억 5,000만 원을 받게 됐다. 여기에 평생 매달 100만 원씩 연금도 지급 받는다.
한국 양궁은 2016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 이어 2개 대회 연속 전 종목 석권에서 한 종목(남자 개인전)만을 남겼다.
16강에서 일본 귀화 선수 하야카와 렌(한국 이름 엄혜련)을 6 대 4, 8강에서 디피카 쿠마리(인도)를 6 대 0으로 이긴 안산은 매켄지 브라운(미국)과의 4강에서 슛오프까지 갔다. 벼랑 승부를 앞두고도 옅은 미소를 보인 안산은 아무렇지 않게 정중앙에 가까운 10점을 쐈다. 이어 브라운이 9점을 맞히면서 안산은 유유히 결승에 진출했다.
혼성전 파트너인 김제덕(17·경북일고)의 우렁찬 “빠이팅!” 등 동료들의 따뜻한 응원이 관중석을 메운 가운데 안산은 “운에 맡기고 즐기면서 시합 하겠다”는 다짐을 완벽하게 지켰다. 승부의 중압감을 초월한 듯한 미소를 시종 잃지 않았고 8점이 나오든 10점이 나오든 표정 변화가 없었다.
참았던 눈물은 시상대에 올라서야 터졌다. “저 원래 되게 많이 울어요”라고 고백한 안산은 “심장이 터질 것처럼 기쁘다”고 소감을 밝혔다. 승부처에서 느낀 감정에 대해서는 속으로는 많이 긴장했다며 “‘쫄지 말고 대충 쏴’라고 되뇌었다”고 돌아봤다.
안산의 양궁 인생은 광주 문산초 3학년 때 시작됐다. “활 쏘고 싶다”며 스스로 양궁부를 찾아갔다. 중3 때 문체부장관기에서 6관왕 전 종목 우승으로 두각을 드러냈고 2018 아시아컵 3차 개인전 은메달, 2019 월드컵 4차 개인전 금메달, 도쿄 올림픽 테스트 이벤트 개인전 금메달 등의 이력을 쌓아갔다. 한편 장민희(22·인천대)는 지난 28일 32강에서 나카무라 미키(일본)에게 2 대 6으로 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