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은행은 국내 시중은행 최초로 외국인 대상 신용 대출 상품을 선보였다. 시중은행이 외면하던 틈새 시장을 공략하기로 마음먹은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됐다. 임용택 전 전북은행장은 지난 2016년 캄보디아 프놈펜상업은행(PPCBank) 인수 계약을 마치고 귀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기내에서 만난 한국행 캄보디아 노동자는 취업 알선 수수료, 항공권 등으로 3,000~5,000달러가 필요한데 이를 대부분 30~40%의 고금리 사채로 마련한다고 토로했다. 임 전 행장은 이들의 부담을 덜어줄 수 있는 방안을 검토하도록 지시했고, 그해 중금리 대환대출 상품인 ‘JB 브라보 코리아(Bravo Korea)’가 출시됐다.
대부분 비전문취업(E9) 비자로 한국에 들어오는 캄보디아인은 입국 직후 전북은행 수원 외국인 금융센터를 찾아 대출을 받았다. 이를 본국으로 송금해 사채 빚을 덜고 국내 체류 기간(4년 10개월) 동안 받은 급여로 매달 전북은행에 상환하고 있다. 외국인 노동자 사이에 입소문을 타면서 대상 국가는 벌써 12개국으로 늘어났다. 이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전북은행의 상품을 알리는 홍보대사 역할을 맡을 정도다. 양광영 센터장은 “현지에서 땅 팔고 사채까지 쓰면서 빚을 지고 들어온 외국인들에게 15% 정도의 금리로 대환 대출을 해주고 있다”며 “원리금 분할이라 실질금리는 10%대 초반으로 떨어져 상품을 이용하는 외국인의 만족도가 아주 높다”고 전했다.
중금리 대출 관련 저신용자 모델을 구축한 것을 통해 외국인 고객의 신용도를 평가하는데, 연체율이 높을 것이라는 우려와 달리 월 연체율도 3~4% 수준에 그친다. 양 센터장은 “외국인 고객은 평일 방문이 어려운 만큼 주말에 문을 여는데, 이틀간 평균 100여 명이 찾는다”며 “개인적으로 그동안 한 일 중에 가장 보람 있다”고 말했다.
전북은행의 시장 선점을 필두로 최근 금융권 전반에 외국인 고객을 잡기 위한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코로나19 영향으로 지난해부터 외국인 체류자가 감소하고 있으나 시장 상황은 고객 증가를 당연시 여기는 분위기다.
은행권은 외국인 체류자 200만 시대를 맞아 전용 상품과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대표적인 것은 해외 송금이다. 국내에서 번 돈을 고국에 보내는데, 이들에게 저렴한 수수료로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국민은행의 ‘KB ONE ASIA 해외송금 서비스’는 올해 상반기 송금액이 전년 동기보다 17.2% 증가했다. 하나은행은 이달 말까지 국내 미얀마 근로자들이 본국에 송금 시 수수료를 100% 면제하는 등 현지 상황까지 고려하고 있다.
주거 부담을 덜기 위한 상품도 늘어났다. 신한은행은 국내 최초로 외국인 전용 전세자금대출을 선보여 최고 2억 원을 3년간 대출해주고 있다. 국민은행도 국내에 거주하며 3개월 이상 국내 소득 증빙이 가능한 만 19세 이상 외국인이 신규 임대차 계약을 체결할 때 전세 자금 대출을 해준다.
은행 중심의 외국인 영업은 금융권 전반으로 확산되는 추세다. 삼성생명(032830)은 영등포스타지점에 50명의 컨설턴트 중 45명을 외국인 설계사로 구성하고 있다. 이들은 최근 3개월간 1,280건의 계약을 체결했고 지난달에는 1인당 평균 10건 이상의 계약을 체결했다.
윤호영 카카오뱅크 대표는 20일 기자간담회에서 “추후 개인사업자와 외국인 등으로 사용자 층을 넓힐 것”이라는 포부를 밝혔다. 개인사업자가 다음 타깃일 것이라는 예상은 있었지만 외국인은 다소 의외였다. 비대면으로만 영업하는 인터넷은행인 만큼 현재 신분 확인의 어려움으로 외국인은 가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어느 정도 시장 상황이 바뀔 것을 예견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송기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대표 발의한 ‘출입국관리법 일부개정법률안’은 외국인등록증 등으로 신분 확인이 가능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안이 통과되면 외국인들도 카카오뱅크와 같은 인터넷은행에서 손쉽게 비대면으로 계좌를 트고 금융거래가 가능해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