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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려함의 극치 '고려주자' 사람과 시대를 잇다

호림박물관 특별전 12월말까지

13세기 고려 유물인 보물1451호 '청자 상감 운학국화문 병형주자' /사진제공=호림박물관13세기 고려 유물인 보물1451호 '청자 상감 운학국화문 병형주자' /사진제공=호림박물관




‘사병의 술이 오랫동안 가득하니(沙甁酒長滿)/ 오랜 세월 바닥나지 않으리(萬年無終盡)’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가 시를 써 귀한 청자 주자(注子)에 새긴 이 시구는 술에 빗댄 인연이 영원하리라 다짐하는 듯하다. 주자는 물이나 술 같은 액체를 담아 따르기 위한 그릇으로, 오늘날의 주전자와 같다. 주자는 정교하고 세밀한 청자 문화가 절정을 이룬 고려 시대에 전성기를 누렸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 호림박물관 신사분관이 다양한 재질의 고려주자 133건, 함께 사용된 술잔과 찻잔 등 85건, 중국의 백자주자 9건 등 총 210점의 유물을 모은 대규모 기획특별전 ‘따르고 통하다, 고려주자’ 전을 개막했다.

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에 제작된 고려 유물인 보물 1453호 '청자 주자' /사진제공=호림박물관11세기 후반~12세기 전반에 제작된 고려 유물인 보물 1453호 '청자 주자' /사진제공=호림박물관



고려시대 주자를 집중적으로 조명한 전시로는 역대 최대 규모다. 지난 1983년과 2010년 오사카시립동양미술관에서 열린 것이나 지난 2018년 고려청자박물관이 기획한 전시도 출품작이 30건을 넘지 못했으니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압도적인 전시다. 유진현 호림박물관 학예사는 “주자는 다른 그릇에 비해 구조가 복잡해 만들기 까다로웠음에도 불구하고 다채로운 장식과 형태로 발전했다”면서 “음주와 끽다(차마시기) 문화와 밀접한 관계를 맺었던 만큼 고려의 삶과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매개체”라고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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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자 주자는 10세기 중반에 등장했고 15세기 조선시대 분청사기로까지 제작됐으니 500년의 역사를 갖는다. 전시는 고려 주자의 초기작부터 펼쳐보이며 고려 말기까지 이어간다. 호림박물관 소장품이자 보물 제1453호인 ‘청자주자’는 11세기 후반에서 12세기 전반기에 제작된 것으로 청동주자의 형태를 그대로 본따 목 부분이 두툼하고 몸통은 아래로 갈수록 풍만하다. 아무런 문양 없이도 단아한 기품을 내뿜는다. 중국 월요청자의 영향이 보이는 10세기 무렵의 ‘청자주자’부터 고려 특유의 비색과 상감 문양이 돋보이는 12세기의 ‘청자표형주자’(보물 1540호), 13세기 ‘청자상감운학국화문병형주자’(보물 1451호)를 비교하며 감상하는 눈호강을 누릴 수 있다. 고려 후기 청자주자를 대표하는 ‘청자상감국화문표형주자’와 ‘청자상감연학문병형주자’는 화려하고 정교한 고려 문화의 극치를 보여준다. 전시실 마지막에서는 ‘청자표형주자’(보물1540호)와 15세기의 ‘백자주자’(국보 281호)를 마치 청자 대 백자의 대결처럼 나란히 보여줘 각기 다른 조형적 특징을 비교할 수 있게 했다.

13세기 고려 유물인 청자 상감 및 철백화 국화문 화형탁잔. /사진제공=호림박물관13세기 고려 유물인 청자 상감 및 철백화 국화문 화형탁잔. /사진제공=호림박물관


전시는 술 문화, 차 문화와 관련된 유물로 이어진다. 고려 때는 국가에서 주점, 다점을 직접 운영할 정도로 술과 차 문화가 발달했다. 12세기 고려 왕실에서 사용된 주자와 승반 등이 호화스러웠던 왕실 문화를 상상하게 만든다. 술병과 술잔에 새긴 글, 차를 마시며 지은 시는 옛 사람의 풍류에 공감하게 한다.

백남준 'W3', 학고재 소장 /사진제공=호림박물관백남준 'W3', 학고재 소장 /사진제공=호림박물관


주자는 사람과 사람을 잇고, 과거와 현재를 연결한다. 술과 차를 마시는 문화가 만남과 소통을 추구했으니 이어지는 특별전 ‘통하고 만나다, 다반향초(茶半香初)’는 소통으로서의 미술을 보여준다. 전시에는 ‘비디오아트’의 창시자로, 인공위성을 이용해 예술을 통한 전 세계와의 만남을 추구한 백남준의 1994년작 ‘W3’가 선보였다. 백남준은 3개의 W, 즉 월드와이드웹을 뜻하는 ‘W3’를 일찍이 1974년에 구상하고 제작비를 마련해 20년 후인 1994년에 완성했다. 본격적인 인터넷 세상은 그 이후에야 도래했다. 주역의 64괘를 상징한 총 64대의 모니터가 2개의 X자 모양으로 교차 설치된 이 작품은 어둑한 전시장에서 별처럼 빛난다. 모니터 속 20분짜리 영상이 1초 간격으로 옆 화면으로 옮겨가며 무한히 이어지는 소통의 과정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현대미술가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는 깨진 청자 조각을 금(金)으로 자연스레 이어 붙여 원래의 모습보다 더 크고 아름다운 형태로 재탄생했다. 전시는 12월 말까지.

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작가 소장 /사진제공=호림박물관이수경 '번역된 도자기', 작가 소장 /사진제공=호림박물관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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