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징벌적 손배, 비판보도까지 사실상 통제…"국민 알 권리 위협"

[언론중재법 무엇이 문제인가]

손해액의 최대 5배 '과도한 징벌'

고의·중과실 추정 조항 기준 모호

입증도 언론 책임…소송 남용 가능성

열람차단 청구는 기사 삭제와 같아

정당한 취재까지 악용 당할 수도

충분한 숙의도 안돼 졸속 입법 우려

5일 한국프레스센터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긴급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5일 한국프레스센터 언론노조 대회의실에서 언론중재법 개정안 관련 긴급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징벌적 손해배상제’ 등을 골자로 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지난달 27일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 법안소위를 통과하면서 최종 관문인 국회 본회의 통과도 초읽기에 들어갔다. 언론계와 시민 단체들의 거센 반발에도 불구하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오는 25일 본회의를 시한으로 잡으며 강한 처리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언론재갈법’이라는 비판과 논란에 휩싸인 개정안을 충분한 숙의 과정 없이 ‘속도전’으로 밀어붙일 경우 그 파장은 막대할 것으로 우려된다. 이미 각계에서는 개정안이 언론의 취재 활동을 위축시킴으로써 헌법재판소가 ‘기본권의 기본권’이라 할 정도로 중시하는 표현의 자유, 언론의 자유를 침해하고 이는 자유민주주의 실현의 심각한 저해 요소로 작용할 것이라는 지적이 거세다. 대기업이나 정치인·공직자들이 징벌적 손해배상과 온라인상 열람 차단 청구를 등을 언론 보도에 대한 ‘전략적 봉쇄’ 조치로 활용한다면 국민의 ‘알 권리’는 심각한 위협에 직면할 수 있다.

◇‘손해액의 최대 5배’ 징벌적 손해배상제, 논란의 핵심=언론중재법 개정안에서 가장 격한 논쟁거리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다. 개정안은 언론 등이 고의나 중과실로 허위·조작 보도를 해 손해를 입었다 판단될 경우 손해액의 최대 5배 범위에서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 손해액 산정의 하한선은 ‘언론사 연 매출의 0.01~0.1%’다. 언론 단체와 전문가들은 이 조항 자체가 언론 활동을 위축시키는 방아쇠로 작용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황용석 건국대 교수는 “이미 언론 보도와 관련해서는 형법의 사실적시 명예훼손죄 외에도 공직선거법상 명예훼손, 정보통신망법 등 다양한 규제 체계가 있다”며 “개정안은 언론중재법의 취지를 정보 유통 규제의 도구로 삼으려는 시도”라고 지적했다. 공익단체 ‘착한 법 만드는 사람들’은 이 조항이 “과잉 입법”이라며 “국회 입법조사처도 언론 보도로 인한 피해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별도로 규정한 다른 선진국 사례는 찾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기준도 불명확한 ‘징벌적 손배’ 대상과 요건=세부적으로 들어가면 문제가 더욱 심각하다. 우선 ‘허위·조작 보도’의 정의가 모호하다. 법안에는 ‘허위의 사실 및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라고 언급할 뿐 자세한 설명이 없다. 지성우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에 따르면 “언론학적으로 정의된 바 없는 개념”이다. 징벌적 손해배상을 발동시키는 요건인 고의·중과실을 추정하는 기준도 추상적이다. 시민 단체 오픈넷은 개정안 반대 의견서에서 “사실상 징벌적 손해배상 여부를 법관의 자의적 판단에 일임하는 셈”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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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개정안은 공직자윤리법 적용 대상자 및 그 후보자, 대기업의 주요 주주, 임원을 징벌적 손해배상 적용 대상에서 제한했지만 예외를 뒀다. 고의나 지속·반복적, 보복성으로 ‘악의를 갖고 허위·조작 보도를 한 경우’다. 하지만 ‘악의’라는 단어의 정의가 모호해 공인의 ‘전략적 봉쇄 소송’에 이용 당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공인을 아예 징벌적 손배 적용 대상에서 빼야 한다는 주장은 사실상 무시됐다는 지적과 함께 “공인에게 수월하게 소송을 제기할 법적 근거를 만들어줬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특히 고의나 중과실 입증 책임을 피고인 언론사에 두도록 한 것은 민법상 대원칙에 어긋난다는 비판이 거세다. 언론사가 보도에 고의성이 없음을 모두 입증해야 하고, 그렇지 못하면 막대한 손해배상액을 떠안아야 한다면 민감한 정치 권력이나 비리에 대한 취재, 보도를 하기 어려워지는 것은 불 보듯 뻔하다. 손지원 오픈넷 변호사는 “피고에 입증 책임을 돌리는 경우는 인과관계 추정이 매우 어려운 의료사고나 환경 소송 정도”라며 “언론사에는 불리한 반면 원고의 책임 부담이 줄어들어 소송이 남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기사 ‘삭제’와 효과 같은 열람 차단 청구, 전략적 이용 우려=진보·보수를 막론하고 가장 거센 반발을 사는 신설 조항은 온라인상에서 기사 열람을 차단할 수 있는 청구권이다. 이는 독자 입장에서 기사 삭제와 다름없는 강력한 효과가 있다. 해외에서도 이 정도로 강력한 조치는 사례를 찾기 어렵다. 특히 온라인상에서 열람 차단 청구가 들어왔음을 즉시 표시하도록 의무화한 것은 “언론 입막음 도구로 활용될 것”이라는 우려를 낳고 있다. 언론개혁시민연대는 성명에서 “민주당 안대로 통과되면 열람 차단 청구가 지나치게 늘 수 있다”며 “열람 차단 청구 표시 조항은 독자에게 기사에 대한 예단 효과를 주기 위한 전략적 수단으로 악용될 여지가 있다”고 주장했다.

◇충분한 숙의 기간 없이 밀어붙이기…이대로면 졸속 입법 불가피=징벌적 손해배상제에 대한 논의는 지난 19대 국회부터 이어졌지만 여당의 당론 차원에서 가시화된 것은 2개월이 채 안 된다. 게다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위한 손해액의 하한선이나 고의·중과실의 추정 등 이번 국회 문체위 법안소위 과정에서 추가된 것들도 있다. 이 때문에 개정안에 대해 다양한 입장을 보이는 언론, 시민 단체들도 졸속 우려에는 이구동성이다. 민주언론시민연합은 “의견 수렴이 충분하게 됐다고 보기 어렵다”는 입장이며, 언론개혁시민연대도 “민주당은 입법안 내용의 충실성을 따지는 비판 의견을 무모할 정도로 무시하고 있다”며 “법안의 결함을 알고도 무시한다면 이야말로 성실한 입법 책무에 대한 고의적 태만이자 중대한 과실”이라고 비판했다.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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