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 총액 2조 원 이상인 기업의 이사회를 특정 성별로만 구성하지 못하게 하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이 내년 8월 5일부터 본격 적용되지만 대상 기업의 44%는 현재 여성 등기 임원이 한 명도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 등기 임원을 둔 기업들도 대부분 사외 이사 형태로 운영하고 있어 ‘유리 천장’이 여전하다는 지적이다.
여성가족부는 상장법인의 성별 임원 현황을 조사한 결과 자산 총액이 2조 원 이상인 152개 기업 가운데 여성 등기 임원을 1명 이상 선임한 기업은 올해 85개로 55.9%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5일 밝혔다. 44.1%에 달하는 나머지 68개 기업은 여성 등기 임원이 한 명도 없어 법 기준을 충족하지 못했다.
지난해 8월 2년의 유예기간을 두고 시행된 자본시장법에 따르면 자산 총액 2조 원이 넘는 상장법인은 등기 임원을 특정 성별로만 구성해서는 안 된다. 기업 내 의사결정 구조의 성별 다양성을 제고함으로써 기업 경쟁력과 지속 가능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다. 유럽연합 대부분의 국가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등 해외에서도 비슷한 제도가 시행되고 있다.
법 기준을 충족했다 하더라도 ‘이사회의 성별 다양성’을 이뤄내기까지는 갈 길이 멀다는 지적이다. 85개의 여성 등기 임원 선임 기업 중 88.2%에 해당하는 75개 기업이 여성 등기 임원을 1명 선임하는 데 그쳤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들 기업의 여성 등기 임원 97명 중 기업 운영에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내 이사는 5명뿐이다. 일각에서 기업들이 법 기준을 충족하기 위해 구색 맞추기 식으로 여성 등기 임원을 선임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전체 상장기업의 여성 임원 비중도 여전히 선진국 수준을 밑도는 것으로 조사됐다.올해 1분기 기준 사업보고서를 제출한 상장법인 2,246개의 전체 임원 3만 2,005명 중 여성은 1,668명으로 5.2%에 그쳤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올해 발표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여성 임원 평균 비율은 25.6%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