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위험등급 제대로 알렸나'가 핵심…"사모 이어 공모펀드 고삐 죄나" 촉각

[금감원 '공모펀드' 전수조사]

운용사·증권사 위험등급 미스매치

피해 보상·공시 과정 등 집중 점검

감독 압력에 공모시장 침체일로 속

정 신임원장 '규제 스탠스'도 주목





금융감독원이 대대적인 공모펀드 위험 등급 실태 조사에 나서면서 최근 증권사의 펀드 판매 담당 직원들은 잔뜩 긴장했다. 금감원의 “지난 5년간 판매한 모든 공모펀드의 위험 등급 공시·관리 서류를 모두 제출하라”는 이례적인 요구 때문이다. 제출 대상 자료가 너무 방대해 금감원이 제시한 데드라인을 지키지 못한 증권사들이 속출했으며 기한 연장을 요청한 곳도 많았다.



무엇보다 금융 투자 업계에서는 금융 당국이 이번 조사를 계기로 사모펀드뿐 아니라 공모펀드 판매 관리에 대한 감독 강화에 나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새로 취임한 정은보 금감원장이 윤석헌 전 원장의 금융 소비자 보호 정책 강화 기조를 이어갈지도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펀드 위험 등급 제도 개편 5년 만의 첫 전수조사=금감원은 지난 2016년 펀드 위험 등급 개편안을 낸 후 처음으로 전수조사를 벌이고 있다. 금융 당국 관계자는 “펀드 위험 등급 정책의 개정 내용을 제대로 반영하고 있는지 점검하는 차원”이라고 설명했다.

2016년 금감원은 펀드 위험 등급을 5등급에서 6등급으로 세분화하는 제도 개선안을 발표했다. 새로 설정한 지 3년이 지나면 운용사에 1년마다 수익률 변동성을 고려해 등급을 조정하도록 한 것이 골자다. 설정 이후 3년간 수익률을 기준으로 수익률 변동성이 25%를 초과하면 1등급, 0.5% 이하면 6등급으로 분류하는 식이다. 펀드 위험 등급이 정기적으로 바뀌게 된 것은 이 때부터다. 기존에는 설정 당시 투자 자산을 기준으로 위험 등급을 한번 매긴 뒤에는 아무리 펀드 수익률이 곤두박질쳐도 등급이 그대로 유지됐다.

1~6 등급은 원금 손실 가능성에 따라 분류한다. 위험도가 가장 높은 1등급의 경우 파생상품 거래를 활용하는 펀드에 주로 적용된다. 만약 투자자의 성향에 맞지 않는 펀드를 팔 경우에는 적합성·적정성 원칙 위반으로 손해배상 책임 등을 져야 한다.



금감원이 집중적으로 살피는 부분은 판매사들이 투자자에게 펀드 위험 등급을 제대로 알리고 있는지 여부다. 우선 운용사가 판매사에 위험 등급 변경 여부를 제대로 전달하고 있는지 조사할 방침이다. 예를 들어 운용사 검토 결과 위험 등급이 4등급에서 3등급으로 올라갔는데, 이를 투자설명서에 누락하면 판매사는 이를 투자자에게 알리지 못해 상품 위험도를 잘못 안내할 수 있다. 펀드 평가사들이 정보를 전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발생하지는 않는지도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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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매사가 자체적인 위험 분류 기준을 적용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등급 미스매치’도 살핀다. 일부 증권사는 내규에 따라 위험 등급을 자체적으로 4~5등급으로 분류한다. 운용사가 투자설명서상 제시한 위험 등급과 판매사가 산정한 위험 등급이 다를 수 있는데 이 부분이 투자자들에게 제대로 설명이 안 되면 불완전 판매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 금감원은 각 금융사에 내부적으로 위험 등급 관련 민원이나 피해 사례가 발생했을 경우의 보상·대처 방안이 있는지도 점검하고 있다.

◇“소비자 보호 취지는 이해…펀드 시장 더 위축 우려”=이번 조사를 계기로 금감원이 사모펀드에 이어 공모펀드 판매 감독에도 고삐를 죄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최근 라임·옵티머스 펀드 사태를 계기로 금융 당국이 공모·사모펀드 판매 규제를 전반적으로 강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 당국은 올해부터 금융소비자보호법을 시행했으며 지난해 8월부터는 사모펀드 1만여 개와 사모전문운용사 230여 곳을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진행해오고 있다.

금감원의 규제 강화로 판매사들이 보다 투자자 보호에 신경을 쓸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금융사들이 불완전 판매 소지에 더 신경을 기울이고 사후 관리에도 더 집중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만 업계에서는 금감원의 펀드 감독 강화가 공모펀드 시장 위축으로 이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최근 판매사들의 공모펀드 판매액은 감소세를 이어가고 있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금융사들의 주식형 공모펀드 판매 잔액은 2016년 말 48조 원에서 올해 6월 말 31조 원으로 감소했다. 개인 투자자들의 직접 투자 성향은 강해지는데 펀드 관련 감독 압력은 점점 높아지고 있어 수요와 공급 전반이 침체됐다는 지적이 나온다.

더구나 금소법으로 펀드 투자 권유, 설명 의무 규제가 강화되자 일반 주식형·주식혼합형 펀드를 점점 취급하기 어려워지고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금감원이 라임·옵티머스 펀드 판매사인 NH투자·KB·대신증권과 우리금융지주와 신한은행 등의 전·현직 최고경영자(CEO)들에게 중징계를 내린 것도 상품 취급을 까다롭게 하는 요소다. 한 업계 관계자는 “펀드를 팔지 말아야 하나 싶다”고 말했다.

업계에서는 6일 취임한 정 원장이 펀드 판매 관행에 어떤 스탠스를 취할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윤 전 원장의 ‘금융 소비자 보호 강화’ 기조를 그대로 이어갈지가 변수다. 윤 전 원장은 종합검사를 부활시키고 금융사 CEO들에게 강한 징계 권한을 발휘해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업계에서는 정 원장이 취임사에서 “금융 감독의 본분은 규제가 아닌 지원에 있다”고 강조한 점을 들어 윤 전 원장보다 시장친화적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다만 정 원장의 ‘기조’는 금소법 유예기간이 끝나는 오는 9월에 본격적으로 드러날 것으로 점쳐진다. 금감원은 이때부터 금소법에 대해 본격적인 감독을 실시할 예정이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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