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내칼럼

[만파식적]볼리바르







2019년 5월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이 국제통화기금(IMF)의 경제 전망치를 비난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중앙은행은 베네수엘라의 연간 물가 상승률이 137만 %에 달한다는 IMF 예측이 잘못됐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내놓은 물가 상승률은 13만 60%였다. 물론 이를 곧이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었다. 베네수엘라 통화인 ‘볼리바르(Bolivar)’가 휴지나 불쏘시개로 쓰일 만큼 끝없는 가치 추락에 시달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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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바르는 베네수엘라 출신의 독립운동 지도자인 ‘시몬 볼리바르(Simon Bolivar)’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시몬 볼리바르는 스페인 지배를 받던 베네수엘라를 비롯해 콜롬비아·에콰도르·페루·볼리비아 등 남미 5개국의 해방을 이끌어냈다. 볼리비아의 국명도 시몬 볼리바르의 이름에서 유래한다. 베네수엘라는 살인적 인플레이션을 견디지 못해 2008년 1,000 대 1에 이어 2018년에도 10만 대 1의 화폐개혁을 실시했다. 지난 3월에는 역대 최고액권인 100만 볼리바르 지폐까지 선보였지만 백약이 무효인 상황이다.

베네수엘라는 세계 석유 매장량 1위의 자원 부국이다. 하지만 우고 차베스 전 대통령부터 니콜라스 마두로 현 대통령까지 22년 동안 좌파가 집권하면서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이어졌다. 무상 교육·의료·토지 분배 등 포퓰리즘 정책을 남발한 데다 국제 유가마저 하락했기 때문이다. 정권은 국고가 바닥나자 화폐를 무한정으로 찍어냈다. 이는 최악의 인플레이션으로 이어졌다. 지난 5월 288%나 올린 최저임금으로도 고기 1㎏을 사기 어렵다. 식량을 제대로 구하지 못해 국민의 평균 체중이 한해 10㎏ 이상 줄어들어 ‘마두로 다이어트’라는 유행어까지 나돈다.

베네수엘라 중앙은행이 3년 만에 또다시 ‘100만 대 1’의 화폐개혁을 실시하기로 했다. 10월 1일부터 볼리바르의 화폐 단위에서 ‘0’을 6개나 빼겠다는 것이다. 방만한 재정 운용과 공짜 복지가 빚은 참담한 현실이다. 남미 좌파 경제의 몰락은 ‘나랏돈 물 쓰듯 쓰기 대회’를 벌이는 우리에게도 남의 일이 아니다. ‘묻지마’ 식 현금 퍼주기에 골몰하면서 성장 정책을 외면하는 포퓰리즘은 망국의 길임을 모두가 깨달아야 할 것이다.


정상범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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