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무총리실이 규제 개선 정책인 ‘규제챌린지’의 일환으로 추진했던 ‘공공 소프트웨어(SW) 사업 대기업 참여 제한’ 완화가 담당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의 반대로 무산됐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9일 용홍택 과기정통부 1차관 주재로 진행된 규제입증위원회에서 국가기관이 발주하는 공공 SW의 대기업 참여 제한을 완화하는 안건을 당장 폐지하는 대신 장기적으로 검토하기로 결론을 내렸다. 대기업·중소기업·협회 등이 참여해 의견을 내는 자리에서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는 현행 유지로 입장을 표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규제챌린지는 김부겸 국무총리가 “해외와 비교해 과도한 규제가 있다면 과감히 개선하겠다”는 의지를 내비치며 도입한 제도다. 공공 SW 대기업 참여 제한은 중소 정보기술(IT) 기업 육성을 위해 지난 2013년 도입됐지만 학교 원격 교육이나 백신 접종 시스템 등 국가적인 차원의 IT 시스템에 자주 오류가 생기면서 대기업에 빗장을 풀어야 한다는 요구가 컸던 사안이다. 이날 위원회에서는 현행 유지 의견과 개선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지만 주무 부처인 과기정통부가 ‘현행 유지’로 방향을 잡으면서 결국 기존 규제를 유지하기로 했다. 국무총리가 역점을 두고 추진했던 사업이 주무 부처의 반발에 좌초된 것이다. 만약 규제입증위원회에서 규제를 철폐하기로 의견이 모아졌다면 국무조정실의 ‘규제챌린지 협의회’를 거친 후 김 총리 주재의 ‘규제챌린지 민관회의’에서 최종 완화·폐지 여부가 결정될 예정이었다. 하지만 첫 문턱도 넘지 못하면서 당분간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는 유지될 것으로 보인다.
이날 위원회에 참석했던 한 관계자는 “민간 위원들 사이에서는 정부 입찰에 대기업이 참여했던 기간은 30년에 달하지만 공공 SW 대기업 참여 제한이 있었던 기간은 아직 8년밖에 안 돼 시장에 미치는 효과를 판단하기에는 이르다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며 “장기적으로 다시 논의를 해보자고 결론이 났다”고 전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IT 분야는 빠르게 변화하는데 이번 규제는 몇 년 뒤에나 논의될 것으로 보인다”며 “국무총리실과 담당 부처에서 어떻게 의견을 조율할지에 달렸다”고 전했다.
공공 SW 대기업 참여 제한 제도는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2013년 도입됐다. 하지만 코로나19 이후 원격 수업, 백신 접종 예약 등 각종 비대면 공공 서비스에서 시스템 오류가 발생해 국민들이 불편을 겪자 기존 공공 SW 입찰 방식에 변화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졌다. 실제 올 초 각 초등학교 원격 수업에 활용된 ‘EBS 온라인 클래스’에서 잦은 서버 오류가 발생했다. 또 지난달 19일 50대를 대상으로 진행된 코로나19 백신 접종 예약 시스템이 수차례 먹통이 됐다. 결국 이날부터 시작된 18~49세 대상 대규모 백신 예약을 앞두고 정부가 민간 IT 기업에 도움을 요청하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됐다. LG CNS, 네이버, 카카오 등 정보통신기술(ICT) 대기업들이 긴급 투입돼 시스템 오류 원인을 추적하고 최적화하는 해결사 역할을 했다.
게다가 중소기업을 육성하기 위해 제도를 도입했지만 일부 기업에 일감이 쏠리면서 대다수의 중소기업은 기존 하청 구조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현상도 나타났다. 주로 입찰에 참여하는 20여 곳의 중견기업들이 대부분의 사업을 따내고 이들이 중소 업체에 재하청을 주거나 중소 IT 업체들을 인수해 덩치를 불리고 있는 것이다. 업계 일각에서는 공공 SW 분야의 강자로 떠오른 일부 중견기업들에 대해 “사실상 제도 도입 이전의 대기업 같은 존재가 됐다”는 지적도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