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초 국내 대표적 e커머스 기업인 쿠팡이 미국 뉴욕거래소에 상장하며 차등의결권 도입에 대한 논의가 커졌다. 차등의결권은 최대주주나 경영진의 보유 지분에 대해 더 많은 의결권을 부여하는 경영권 방어 수단의 하나로 꼽힌다.
차등의결권은 글로벌 5대 증권시장이 모두 도입했다. 유니콘 기업 배출 1~4위 국가인 미국·중국·영국·인도가 모두 허용하는 제도다. 미국 구글의 창업자들은 약 11%의 지분으로 52%에 달하는 의결권을 행사한다. 중국도 2014년 알리바바의 미국 뉴욕 증시 상장에 충격을 받고 2018년부터 전격적으로 허용하고 있다. 이처럼 차등의결권 도입은 투자 유치와 경영권 방어를 위한 세계적인 흐름이 되고 있다.
우리 정부는 ‘쿠팡 미국행’에 놀란 나머지 관련 법률을 개정하겠다고 나섰지만 아직까지 감감무소식이다. 정부가 제출한 내용을 보면 비상장 벤처기업으로 범위를 한정하고 적용 요건이 매우 엄격해 실효성이 떨어지는 반쪽짜리 법안임에도 제대로 추진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경영권 방어를 위한 수단들이 소위 ‘재벌 세습의 제도화’라며 반대하고 있다. 그들의 주장에도 나름의 이유가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글로벌 시대에 무엇이 세계적 표준에 맞는 것인지, 우리나라에만 있거나 없어서 세계적 경쟁력이 떨어지는 것은 아닌지 깊이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다.
일례로 기업인들을 처벌할 때 주로 적용되는 배임죄에 대한 시각도 변화될 필요가 있다. 실제로 배임죄를 처벌하는 나라도 드물다. 배임죄가 없는 미국과 프랑스는 물론이고 세계 최초로 배임죄를 형사법전에 규정한 독일도 ‘경영판단의 원칙’을 명문화하며 유명무실해졌다. ‘경영판단의 원칙’은 경영자가 기업 이익을 위해 신중하게 판단했다면 예측이 빗나가 기업에 손해가 발생한다 해도 배임죄로 처벌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우리나라에서도 법원의 배임죄 적용 해석이 엄격해지는 추세다. 자칫 검찰 등 수사기관이 자의적으로 기소할 수 있는 법 조항이기 때문에 법원이 적절하게 통제할 필요가 있고, 입법적으로는 배임죄 폐지가 힘들더라도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를 통해 균형을 맞출 필요가 있다. 검찰의 수사권 남용에 대해 그리 비판하면서 수사기관이 편한 칼자루로 남용할 위험이 있는 배임죄에 대해 아무런 논의를 하지 않는 것은 모순이라고 생각한다.
필자도 지난해 차등의결권 도입과 경영판단의 원칙 명문화 등을 내용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을 발의해둔 상태지만 이번 정부에서 적극적인 논의가 진행되는 것이 현재로서는 힘들어 보인다. 전통적인 반기업 정서에 편승한 감정적·이념적 접근이 아니라 무엇이 우리나라에 도움이 되고 세계적 추세에 따르는 것인지를 이성적인 관점에서 접근하는 생각이 점차 커지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