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여름 날씨는 변칙의 연속이었다. 이례적인 지각 장마와 기록적 폭염의 원투 펀치를 맞은 사람들은 비로소 이상 기후가 코앞에 다가왔음을 실감했다. 다만 기후 전문가들은 변덕스러워진 날씨 변화의 배후에 지구온난화가 있음을 짐작하면서도 명확한 인과관계로 묶어내는 데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었다. 학문적으로는 적어도 10~20년의 장기 누적 데이터가 뒷받침돼야만 인과관계를 따질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번에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 간 협의체(IPCC)가 8년 만에 내놓은 6차 평가보고서에서 변칙 기상 현상이 기후변화로 초래된다는 점을 최신 데이터를 동원해 재확인하면서 둘 사이 연관성을 주장하는 목소리에 한층 힘이 실리게 됐다.
IPCC는 지난달 26일부터 이달 6일까지 열린 제54차 총회에서 이 같은 내용이 담긴 ‘IPCC 제6차 평가보고서(AR6) 제1실무그룹 보고서’를 승인했다. 이번 보고서는 앞선 5차 보고서와 달리 인구 통계, 산업화 정도 등을 고려해 향후 기후 변화 양상을 5개 시나리오로 세분화해 예측했으며 인간에게 책임이 있음을 분명히 했다. 또한 활용된 관측 자료가 세밀해졌고 분석 기법도 고도화됐다.
61개 지역 별 분석…동아시아는 극한 고온·호우↑ 전망
보고서에는 우리나라의 올해 여름 날씨 뿐만 아니라 북미 지역의 기록적 폭염 등 전 지구적으로 나타나는 이상기후와 기후변화와의 연결고리를 짐작하게 하는 대목을 곳곳에서 발견할 수 있다. 보고서에 따르면 산업화 이전 시기(1850~1900년) 대비 평균 기온이 1.5도가 오를 경우 50년·10년에 한번 꼴로 발생했던 수준의 폭염이 각각 8.6배, 4.1배 많이 발생하게 된다. 이미 다다른 수준인 1도가 오른 상황에서는 각 4.8배·2.8배 자주 일어난다. 폭염 외에도 지표면 온도가 높아지면 이상 고수온, 집중 호우, 일부 지역 내 농업·생태학적 가뭄의 빈도와 강도 등이 급격히 증가할 수 있다고 경고한다.
향후 기후 변화 양상을 61개 지역 별로 나눠 분석한 것도 이번 보고서의 특징이다. 평균 지표 온도, 평균 강수량, 극한 고온, 호우와 홍수 등 총 35개 인자를 정의해 각 지역 별로 해당 인자의 증감 여부를 전망한다. 한국이 포함된 동아시아(EAS) 지역은 높은 신뢰도로 극한 고온과 호우가 증가할 것이라고 예측됐다. 기상 관측 이래 최고 더위였다는 지난 2018년에 이어 역대 5번째 폭염을 맞은 올해까지 최근 들어 수위권에 드는 폭염이 연잇는 것이 우연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30년 안에 사라질 북극 해빙…올해 폭염·지각장마 일으킨 ‘블로킹’ 부추길 것
향후 30년 안에 북극 해빙이 모두 녹는다는 전망도 나온다. 제시된 5개의 시나리오 중 탄소를 가장 적게 배출하는 시나리오 상으로도 2050년 오기 전 최소 한 번은 여름이 끝나가는 9월 중 북극 해빙이 다 녹을 가능성이 높다고 예견하고 있다. 막연히 21세기 내 해빙이 다 녹을 수 있다는 그간의 전망보다 구체적이고 암울한 경고다.
북극 해빙 감소는 북극만의 일이 아니다. 대기와 해류 순환에 영향을 주고 결과적으로 지구 반대편 지역의 기후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북극은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중·저위도 지역보다 더 크게 받는다. 온난화가 진행될수록 북극과 저위도의 온도·압력 차이가 감소하는 이유다. 온도와 압력 차이에 비례하는 제트기류와 같은 공기 흐름도 약해지게 된다. 이 때문에 고기압이 정체되는 현상이 잦아지고 그만큼 날씨 진행이 지체된다. 흔히 ‘블로킹’이라고 일컫는 이 현상으로 여름에는 폭염이, 겨울에는 한파가 오래 지속되는 것이다. 이번 여름 늦은 장마와 폭염도 이러한 매커니즘에 의해 발생했다. 변영화 국립기상과학원 기상연구관은 “북극 해빙이 녹는 영향이 북극 안에서만 일어나는 게 아니다”며 “북극 기온 변화가 주변의 제트기류의 방향, 속도 등과 연결돼 있기 때문에, 중위도 지역의 폭염, 한파로 이어질 수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