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전쟁·팬데믹 낳은 '세계화'에 해결 열쇠도 있다 [책꽂이]

◆제프리 삭스-지리 기술 제도(제프리 삭스 지음, 21세기북스 펴냄)

코로나·무역갈등·극단 불평등 등

초연결 탓 숱한 위기 만들었지만

더 강한 글로벌 연계로 극복해 와

7번의 세계화 통해 인류문명 진화

국경 뛰어넘은 국제적 협력 중요








코로나19의 전 지구적 팬데믹(대유행) 사태는 우리가 중요하다 믿어 온 사상이나 개념 중 상당수를 혹독한 검증과 비판의 도마 위에 올려놓았다. 전 세계를 뒤집어 엎은 신종 전염병 앞에 우리는 이전까지 당연히 옳다고 생각했던 것들을 의심하게 됐다. 그 가운데 하나가 ‘세계화’(Globalization)다. 중국 우한에서 코로나19 증상이 처음 발현된 후 바이러스는 빠른 속도로 퍼져 나가 불과 한 달 만에 이탈리아 로마에 당도했다. 확진자는 한 달 남짓 만에 전염병은 세계 각지로 퍼졌다. 페스트, 스페인 독감, 사스(SARS) 등 과거 창궐한 전염병의 유행이 작게는 하나의 국가, 넓게는 하나의 대륙 수준이었던 것과는 확연히 달랐다. 세계화가 만들어 놓은 초(超)연결사회의 그림자는 그렇게 전 지구에 짙게 드리웠다.

하지만 국제금융, 거시경제, 재건 분야 석학인 제프리 삭스 미 컬럼비아대 교수는 지금 같은 상황에 전 지구적 협력이 더욱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는 신간 ‘지리, 기술, 제도’에서 “인간의 역사에선 세계화에서 생겨나는 위협을 이해하고 정면으로 맞서는 것이 중요한 과업이었다”며 “이 투쟁은 세계화를 종식하는 게 아니라 국제적 협력의 수단을 잘 동원해 글로벌 규모의 상호 연계성에 따르는 부정적 결과를 잘 통제하는 과정이었다”고 말한다.

SM상선의 'SM뭄바이' 호가 수출화물을 싣고 부산신항을 출항하고 있다. 글로벌 교역의 증진은 세계화의 특징이자 순기능으로 꼽힌다. /사진 제공=SM상선SM상선의 'SM뭄바이' 호가 수출화물을 싣고 부산신항을 출항하고 있다. 글로벌 교역의 증진은 세계화의 특징이자 순기능으로 꼽힌다. /사진 제공=SM상선



인류가 에이즈에 대응한 과정은 연결된 세계의 양면을 잘 보여준다. 1980년대부터 에이즈로 숨진 사람은 2,800만 명에 이른다. 하지만 과학계의 신속한 연구가 세계로 퍼진 덕분에 지금 적어도 미주, 유럽, 아시아 등지에서는 에이즈가 치명적 질병에서 관리 가능한 만성 질환 수준으로 인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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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은 세계화 과정이 어떻게 인간과 문명을 발전시켰는지 역사적으로 설명한다. 책 제목이기도 한 지리, 기술, 제도는 문명이 발전하기 위해 필수적인 3박자다. 가령 아메리카는 유럽인이 기술과 제도를 가져가기 전엔 자원만 풍부한 대륙이었다. 하지만 유럽의 기술, 산업혁명의 추진력과 민주주의란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세계 최고의 패권 지역이 됐다.

저자는 이러한 관점에 따라 인류 역사를 크게 7개 시대로 나눠서 설명한다. 우선 아프리카 대륙에서 출발한 현생 인류가 전 세계로 이주한 구석기 시대와 농경을 시작한 신석기시대, 말을 이동 수단으로 이용하게 된 기마 시대, 그리스·로마 고대 제국이 융성한 고전 시대가 있다. 이어 지리상의 발견과 제국주의가 태동한 해양 시대, 산업혁명의 결과 제국주의·냉전과 자본주의가 꽃핀 산업 시대, 그리고 현재의 디지털 시대에 이른다. 책의 원제목인 ‘The Ages of Globalization’(세계화의 시대)에서 드러나듯, 세계화는 이렇게 시대를 구분하는 커다란 기준이다.

지난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정상회의가 열릴 당시 전 세계에서 모인 반세계화 시위대가 회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시위는 세계화의 부정적 유산이 부각된 첫 사례로 꼽힌다. /AP연합뉴스지난 1999년 미국 시애틀에서 세계무역기구(WTO) 정상회의가 열릴 당시 전 세계에서 모인 반세계화 시위대가 회의에 반대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다. 당시 시위는 세계화의 부정적 유산이 부각된 첫 사례로 꼽힌다. /AP연합뉴스


물론 세계화로 인한 혜택만 있던 것은 아니다. 제국주의, 전쟁, 불평등 등은 세계화가 안겨준 대표적인 부정적 유산이다. 지금의 디지털 시대에도 세계화가 안겨준 불안 요소가 있다. 경제적 불평등의 심화와 글로벌 환경 위기, 강대국 간 전쟁위험, 세 가지다. 고학력 노동자의 임금은 폭등하는 반면 로봇·인공지능(AI)에 대체될 직업 종사자의 소득은 줄어들고 있으며, 조세 등을 통한 소득 재분배는 지지부진하다고 책은 지적한다. 또한 최근 미중 간 갈등 국면이 보여주는 모습은 전쟁의 위험까지도 내포하며, 기후변화와 생물 다양성의 상실 등 환경 위기는 생존을 위협한다.

하지만 이를 해결할 실마리 역시 세계화에서 찾아야 한다고 책은 강조한다. 이를 위해 지속 가능한 발전을 지향해야 하고 한 국가의 범위를 넘는 큰 문제에 대응할 지역적·국제적 협력이 중요하다. 분열이 아닌 협력을 지향할 수 있는 정치의 중요성도 언급한다. 이 어려운 과제를 풀기 위한 실마리로 저자는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언급한다. 스미스는 글로벌 무역을 통해 지식이 확산되고 글로벌 세력의 재균형이 이뤄질 것으로 내다봤다. 실제로 오늘날 중국과 과거 식민지 국가들이 국제 경제에 참여함으로써 기술력, 군사력 분야에서 엄청난 진보를 이뤘다. 삭스는 “스미스는 세력의 재균형이 ‘상대방에 대한 존경으로 이어지는’ 세상을 예언했다”며 이것이 우리 시대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3만2,000원.


박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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