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데니태극기'부터 항일유산, 보물된다

현존 가장 오래된 '데니태극기'

김구 독립 호소문 적힌 태극기

광복절 앞두고 보물 지정예고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




우리나라에 있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는 국립중앙박물관이 소장한 ‘데니 태극기’다. 중국 주재 미국 영사로 일하다 1886년 이훙장(李鴻章)의 추천으로 고종의 외교 고문이 된 오웬 니커슨 데니(1838~1900)의 이름을 딴 태극기다. 1886년 6월 조선과 프랑스 간의 통상조약 체결 당시 조선이 불리한 조약을 맺지 않도록 조력했고, 1888년 3월에는 국제법적 이론을 토대로 독립국 조선에 대한 청의 내정간섭은 부정하다고 주장한 ‘중국과 한국(China and Corea)’을 발표했다. 결국은 이 글 때문에 중국의 눈 밖에 나 1891년 초 조선을 떠나게 됐다. 데니의 유품 중에서 발견된 ‘데니 태극기’는 세로 182.5cm, 가로 262㎝로 국내 옛 태극기 중 가장 크다.



‘데니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은 12일 열린 제4차 동산문화재분과위원회 심의에 따라 ‘데니 태극기’를 비롯해 ‘김구 서명문 태극기’와 ‘서울 진관사 태극기’ 등 태극기 유물 3건을 국가지정문화재 보물로 지정 예고했다. 문화재청 측 관계자는 “이번에 지정 예고한 태극기 3건은 19세기~20세기 초 제작된 것들로, 일제강점기 혹독한 시련 속에서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켜내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문화재”라며 “우리 역사 최초로 국기(國旗) 제작이 시도되고 변천되는 과정과 독립에 대한 열망과 한국인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간절한 염원을 담은 대한민국 역사의 대표이자 우리 민족의 상징이라는 가치를 인정받았다”고 밝혔다.

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의 뒷면. /사진제공=문화재청국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태극기인 '데니 태극기'의 뒷면. /사진제공=문화재청


데니가 1891년 1월 본국으로 돌아가면서 이 태극기를 가지고 갔으므로, 학계에서는 ‘데니 태극기’가 늦어도 1890년에 제작된 것으로 보고 있다. 소장자 사후 그의 후손이 1981년 우리나라에 기증했다.



우리나라에서 국기를 처음 만들어 사용한 때는 1882년 9월이었고 이듬해인 1883년 3월 6일 고종이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초기 국기들의 실물이 존재하지 않는 상황에서 가장 오래된 ‘데니 태극기’는 우리나라 국기 변천사를 연구하는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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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범 김구의 서명문이 적힌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백범 김구의 서명문이 적힌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


‘김구 서명문 태극기(金九 署名文 太極旗)’는 1941년 3월 16일 대한민국임시정부 국무위원회 김구(1876~1949) 주석이 독립의지를 담은 글귀를 적어 친분이 있던 벨기에 출신 매우사(梅雨絲·샤를 메우스)에게 준 것이다. 당시 매우사 신부는 중국 충칭에서 선교활동을 하고 있었는데, 김구 선생이 태극기에 글을 써 주며 “미국에서 우리 동포를 만나면 이 글을 보여달라”고 부탁했다고 한다. 이 일화는 미주 한인들이 발간한 신문인 ‘신한민보’ 1942년 3월19일자에 보도됐다. 서명문에는 “우리 한인을 만나는 대로 이 의구(義句·올바른 글)의 말을 전하여 주시오. 지국(止國·망국)의 설움을 면하려거든, 자유와 행복을 누리려거든, 정력·인력·물력을 광복군에게 바쳐 강노말세(强弩末勢·힘을 가진 세상의 나쁜 무리)인 원수 일본을 타도하고 조국의 독립을 완성하자”고 적혀 있다. 이후 매우사 신부는 도산 안창호 선생의 부인 이혜련 여사에게 이 태극기를 전했고, 후손들은 ‘안창호 유품’ 중 하나로 1985년 3월 11일 독립기념관에 기증했다. 문화재청 측은 “이 태극기에는 김구와 안창호로 대표되는 일제강점기 해외 독립운동가들의 활동과 한국인들의 광복에 대한 염원이 생생하게 담겨 있다는 역사적 의의가 있다”고 보물 지정의 배경을 설명했다. ‘김구 서명문 태극기’는 지금까지 알려진 19세기~20세기 초 제작 태극기 중 정확한 제작시기가 알려진 유일한 자료이며, 1942년 6월 대한민국임시정부가 태극기의 제작규정을 통일하기 직전에 제작돼 태극기의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데 매우 귀중한 자료가 된다.

서울 진관사에서 발견된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서울 진관사에서 발견된 태극기가 보물로 지정 예고됐다. /사진제공=문화재청


이들과 함께 보물로 지정 예고된 ‘서울 진관사 태극기’는 지난 2009년 5월 26일 서울시 은평구 진관사의 부속건물인 칠성각(七星閣)을 해체·복원하는 과정에서 내부 불단(佛壇) 안쪽 벽체에서 발견됐다. 독립신문류 19점이 태극기에 보자기처럼 싸인 채 함께 발견됐다. 독립신문류 19점이 함께 발견되었다. ‘경고문’ ‘조선독립신문’ 등 발견된 5종의 신문들이 1919년 6월 6일부터 12월 25일까지 발행된 사실을 통해 전문가들은 태극기 역시 3·1만세운동이 일어나고 대한민국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즈음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학계에서는 진관사 승려이자 국내 불교계의 독립운동을 실질적으로 총괄한 백초월 혹은 그와 관련된 인물이 태극기를 숨겨둔 것으로 보고 있다. 진관사 태극기의 가장 큰 특징은 일장기 위에 태극과 4괘의 형상을 먹으로 덧칠해 항일(抗日) 의지를 극대화했다는 점이다.

이와 함께 문화재청은 항일독립유산인 ‘한국광복군 총사령부 성립 전례식 서명문 및 축하문’ ‘한국광복군 기관지 광복(光復)’ ‘한국광복군 훈련교재 정훈대강’ ‘김좌진 장군 사회장 약력서’ 등 4건을 문화재로 등록 예고했다.


조상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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