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1만가구 '철회서' 제출…공공 일방통행에 이웃이 '원수'로

정부 적절한 '보상' 약속했지만

주민 상당수 '못 믿겠다' 반대

찬성 주민들과 갈등 더 커져

"지역 주민동의 없이 사업 강행

찬반 갈등 격화 불렀다" 비판

노형욱 국토부장관이 국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서울경제DB노형욱 국토부장관이 국회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서울경제DB




“얼마 전만 해도 서로 반갑게 인사하던 이웃들이 이제는 완전히 원수가 됐습니다. ‘누구는 찬성파다, 누구는 반대파다’ 낙인이 찍혀 서로 얘기조차 나누지 않습니다.”(서울 도심공공개발 후보지의 한 주민)




정부가 야심 차게 추진한 ‘2·4 공급 대책’이 흔들리고 있다. 핵심인 ‘도심공공주택복합사업(도심공공개발)’에 반대 의사를 밝힌 가구 수만 18곳, 4만여 가구에 이른다. 정부가 후보지로 정한 56곳, 7만 5,000여 가구의 절반에 해당하는 규모다. 이 중 6곳, 1만 1,000여 가구는 공식적으로 사업 철회서를 제출한 상태다. 이런 가운데 일선 현장에서는 개발을 찬성하는 주민과 반대하는 주민 간 갈등이 더욱 심화하고 있다. 시장에서는 이미 예견될 일이라는 반응이다. 정부의 일방통행식 공급 대책이 빚은 결과라는 지적이다.



◇‘도심공공개발 반대’…목소리 커진다=현재 도심공공개발 후보지 가운데 정부에 공식적으로 사업 철회 의사를 밝힌 곳은 6곳, 1만 1,013가구다. 여기에 공공개발에 반대하는 ‘연합회(공반연)’ 소속 후보지 대부분이 사업 철회 의견서 제출을 서두르고 있다. 현재 철회 동의서를 제출했거나 준비 중인 지역들을 보면 도심 내 대규모 지역에 특히 집중된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하는 주민들의 상당수는 건물주이거나 상가 소유주, 비교적 넓은 면적을 소유한 주민 등인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반대 이유는 ‘재산권 침해 우려’다. 정부는 2·4 대책을 통해 해당 지역 토지 등 소유자에게 ‘적절한 보상’을 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실제 가치대로 보상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우려가 높다. 서울의 한 도심공공개발 후보지 비상대책위원회 관계자는 “공시가격 수준으로 보상해줄 테니 건물을 내놓으라고 하면 누가 순순히 내놓겠느냐”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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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가를 소유한 주민들은 사업 기간 내에 사실상 영업이 중단되는 탓에 호구책이 사라지게 된다고 우려를 표하고 있다. 사업을 위한 이주 자체를 꺼리는 고령층 주민 등까지 더해지면서 반대하는 주민들이 더욱 늘어나는 상황이다. 공반연 대표 A 씨는 “정부가 후보지로 지정한 후 투기로 의심되는 거래가 늘면 후보지를 취소한다고 했는데, 언론 보도를 보면 이미 상당한 투기 거래가 발생하고 있다”며 “그러는 동안 부동산 가격이 급등하는 등 문제가 나타나고 있는데 이를 가만히 둔다는 것 자체가 책임 방기”라고 지적했다.

반면 낙후된 지역의 개선을 요구하는 주민들은 속이 타들어가고 있다. 사업성이 낮아 민간 개발이 어려운 만큼 이번 기회를 통해 거주 여건 개선을 반드시 이뤄내고 싶다는 분위기가 읽힌다. 서울 은평구의 한 주민은 “반대파가 여러 방면으로 방해하고 있지만 지역 내 대부분은 개발을 원하고 있다”며 “결국 다수의 흐름대로 흘러가지 않겠나. 비대위가 말하는 반대 동의서는 허수가 상당히 섞여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엇갈리면서 양측은 본격적으로 갈등 구도로 대립하고 있다. 서울 동대문구의 한 주민은 “서로 소송이나 신고를 하겠다며 싸우는 건 예삿일”이라고 전했다. 상당수 지역은 ‘찬성파’와 ‘반대파’가 별도 사무실을 열고 ‘내 편 모으기’에 열중하는 중이다.



◇주민 동의 없이 추진하더니…예견된 갈등 초래=이 같은 반목은 사업 구조상 필연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정부는 이 사업을 추진하면서 해당 지역 주민들의 의사를 묻지 않고 지방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아 일방적으로 추진한 뒤 주민 동의를 걷기 시작했다. 사전에 의사를 물으면 투기 수요가 몰릴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었지만, 이 때문에 뒤늦게 개발 소식을 접하게 된 주민들은 공공 주도 사업에 일방적으로 끌려다닐 수밖에 없게 됐다. 한 전문가는 “일방통행식 공급 대책이 시작될 때부터 예견된 일이다”고 꼬집었다.

시장에서는 정부가 가까스로 사업을 끌고 간다 해도 결과는 초기 목표와 크게 동떨어진 ‘만신창이’ 수준이 될 것이라는 우려를 내놓고 있다. 현재까지 확보했다고 밝힌 7만 5,000여 가구 중 절반 이상이 탈락 위기에 놓인 데다 공공에 대한 신뢰 저하로 추가 후보지 모집도 쉽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당초 정부는 도심공공개발로 오는 2025년까지 12만 3,000가구 규모의 부지를 확보한다고 밝혔다. 하지만 갈등이 터지면서 최근 후보지 발굴 속도가 눈에 띄게 느려진 상태다. 뒤늦게 주민이 직접 제안하는 형태의 후보지 접수를 시작했지만 현재로서는 가시적인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다. 이태희 건설산업연구원 부연구위원은 “복잡한 이해관계가 존재하는 도심 내 주택 공급은 다수 토지주들이 자발적으로 동의하지 않으면 사업이 추진될 수 없다”며 “토지주들의 이기심을 죄악시하지 않고 적절한 선에서 이를 오히려 활용하는 방향으로 지혜로운 정책 설계를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동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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