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점령한 지 이틀째인 16일(현지시간) 본격적인 공포정치가 시작됐다. 남은 아프간인들은 숨죽인 채 하루를 보냈다.
영국 가디언은 "아프간이 탈레반에 완전히 지배된 첫날인 이날 수도 카불에서는 탈레반 조직원들이 경찰차를 탈취해 순찰하는 가운데 거리에서 여성이 사라졌다"고 보도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탈레반 조직원들이 카불 거리를 장악하고 정부관리 집과 사무실, 언론사를 수색하면서 공포와 두려움이 퍼졌다"고 전했다.
탈레반은 카불을 장악한 뒤 곳곳에 검문소를 세우고 아프간 경찰과 미군이 버린 차를 탈취해 탈레반 깃발을 달고 타고 다니며 순찰하고 있다. 터번을 두른 탈레반 조직원들은 행인들의 휴대전화를 검사해 정부와 일한 흔적이 있는지, '이슬람적이지 않은' 자료가 있는지 확인하기도 한다.
탈레반은 호텔 등에 쳐들어가 '불시검사'를 벌이기도 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간과 캐나다 이중국적자인 로지나란 이름의 여성은 남편과 머무는 호텔 방에 탈레반 조직원들이 호텔관리인과 함께 찾아와 짐을 뒤지고 여권을 확인한 뒤 둘이 무슨 관계인지 물었다고 WSJ에 말했다. 로지나는 혼인 증명서를 요구하는 탈레반 조직원에게 남편이 "독실한 이슬람신자는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는다"라고 항의했다가 폭행당했다고 밝혔다.
탈레반은 가택침입도 서슴지 않고 있다. 한 여성 정치인은 자신의 집에 탈레반 조직원들이 들이닥쳐 경비들을 무장해제하고 집 밖에 나가지 못하게 지키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또 20대 여성 공무원은 탈레반 조직원들이 아파트 입구에 모여있어 모든 문을 잠그고 정부에서 일한 자료를 전부 소각했다고 말했다. 그는 대학을 다녔던 기록만큼은 남겨뒀다면서 "과거 내가 힘들게 이룬 일을 모두 태워버리고 싶지 않다"라고 설명했다.
탈레반은 여성이 교육받는 것을 금지한다. 탈레반 지도부는 '정상적인 수권세력'처럼 보이고자 노력하며 여성의 권리를 존중하겠다고 밝혔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해 여성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다. 가디언은 여성들이 부르카로 전신을 가리지 않았다거나 남성보호자와 동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탈레반 조직원에게 폭행당할까 두려워 집에 머문다고 보도했다. 지도부가 부르카 착용과 관련해 아직 지침을 내린 것은 아니지만 이날 카불 서부지역 한 모스크에서 탈레반 조직원들이 여성에게 부르카나 히잡을 착용하라고 강요하는 방송을 했다고 가디언은 설명했다. 또 무장한 탈레반 조직원이 부르카로 신체를 가리지 않았다는 이유로 식료품을 구하러 집 밖에 나온 여성을 위협해 다시 들여보내는 모습이 포착됐다고도 덧붙였다. 지난 20년간 부르카 없이도 살 수 있었던 카불의 여성들 다수가 현재 부르카가 없어 이를 구하느라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전해졌다.
탈레반이 점령지에서 여성을 조직원과 강제로 결혼시켰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여성들의 두려움은 더욱 커지고 있다. 프랑스24 방송은 "탈레반이 집마다 찾아다니며 조직원들과 결혼시킬 12~45세 여성 명단을 작성하고 있다는 보고가 여러 건 있다"라고 보도했다. 카불에 남은 '자유유럽방송' 소속의 한 기자는 트위터에 "아프간 언론도 탈레반화되고 있다"라면서 "대부분 방송이 오늘 아침부터 여성 아나운서를 출연시키지 않고 음악을 틀지 않는다"라고 남겼다. 현재 아프간 방송에선 뉴스와 드라마가 사라지고 광고 없는 종교프로그램만 방영된다고 한다. 카불 상점가에선 여성이 모델인 광고사진을 떼어내거나 페인트로 덧칠해 가리는 모습이 목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