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높은 디지털 잠재력에도 생산성이 둔화되는 ‘생산성 역설’이 장기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투자·산업 구조가 여전히 기존 유형 경제 프레임에 의존하고 있기 때문에 기술혁신의 생산성 개선 효과를 제약할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규제를 기술변화 수준에 맞게 바꿔야 할 뿐 아니라 기업들이 디지털 전환에 역량을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한국은행은 18일 ‘디지털 혁신과 우리나라의 생산성 역설’ 보고서를 통해 “우리나라는 정보통신기술(ICT)산업 발전정도, ICT인프라, 유무형 투자, 혁신역량 등 디지털 전환을 위한 기초여건이 양호하지만 경제 성장이나 생산성 둔화가 지속된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혁신지수 순위는 2012년 21위에서 2020년 10위로 상승했지만 생산성 증가율은 오히려 하락세가 나타나고 있다. 선진국 추격 여력이 약화하면서 소득 수준은 고소득국가 대비 50%, 노동생산성은 70% 수준에서 둔화되는 양상이다. 이는 높은 디지털 잠재력이 경제성장이나 생산성 제고로 이어지지 못하는 생산성 역설 현상이 일정 정도 작용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연구진은 ICT제조업의 글로벌 경쟁 심화와 취약한 ICT서비스업 경쟁력은 디지털 경제로의 이행에 제약요인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봤다. 우리나라 경제에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ICT제조업이 성숙단계에 진입하고 글로벌 경쟁이 격화하면서 과거 고성장을 기대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반면 ICT서비스의 기술경쟁력은 낮은 수준으로 국내 시장을 글로벌 기업이 선점하고 있는 상황이다.
투자 측면에서는 유형자산 위주의 투자 행태와 인적·조직자본 등 비기술 혁신에 대한 투자 부진은 디지털 전환 가속화를 제약하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우리나라 유형투자 대비 무형투자 비중은 2011~2015년 평균 38.9%로 미국(74.9%), 영국(74.8%), 네덜란드(73.1%) 등 주요국 대비 낮은 수준이다. 금융에서도 구조적 한계점을 개선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보증·대출 등 간접금융 중심의 구조는 창업 초기 기업들에 재무적 부담으로 작용할 소지가 있기 때문에 지분투자 등 직접금융 형태가 적합하다는 것이다. 국내 벤처투자 시장이 정책자금 위주로 형성되면서 민간의 자율성 약화로 정책자금에 대한 의존도가 심화할 우려도 제기된다.
연구진은 생산성을 높이려면 현재 ICT 산업이나 투자 구조를 디지털 혁신에 적합한 형태로 전환해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정선영 한은 경제연구원 부연구위원은 “규제를 기술변화에 맞도록 합리화해 다양한 신규 ICT 서비스가 창출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며 “리스크가 높지만 도전적인 혁신 기술은 정부가 초기 시장형성을 도움을 줘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