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공감] 나의 상처이자 자랑인 사람에게






“서로를 모르는 채로 살았더라면.” (…) “정말 그렇게 생각하니? (…) 끝이 슬프면 그런 생각이 들지도 모르겠구나. (…) 새비 아주머니는 엄마의 상처였어. 그렇지만 자랑이기도 했지. 엄마를 크게 넘어뜨렸지만, 매번 털고 일어날 힘이 되어주기도 했으니까. (…) 새비 아주머니를 만나 아픈 일이 많았는데도, 새비 아주머니를 기억하는 엄마의 표정은 늘 환했어. 꼭 다른 세상에 있는 사람처럼 말이야.” (최은영, ‘밝은 밤’, 2021년 문학동네 펴냄)





왜 나이 들어갈수록 점점 만나면 안 되는 사람, 한자리에서 마주치면 애매해지는 사람이 늘어가는 걸까. 결국 삶이, 관계의 끝이 이런 것이라면 열심히 좋아하고 그렇게까지 노력하며 살 필요가 없는 게 아닐까. 한동안 나는 이렇게 못 만날 사람들이 늘어나는 게 내 잘못인지, 남들도 그런지 괴로움 속에서 묻고 다니곤 했다. 최은영의 ‘밝은 밤’은 이렇게 막막한 밤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손을 내미는 소설이다.

이 소설에는 한때 가장 가깝고 사랑했던 이들을 만나지 않고 있거나 못 만나게 된 사람들이 나온다. ‘나’는 이혼 후 외딴 곳으로 떨어져나왔고, 엄마와 그 엄마를 낳아준 할머니는 서로 연락하지 않은 지 오래다. 뜻밖의 장소에서 ‘나’는 할머니와 조우한다. 그리고 자신이 전혀 알지 못했던 가족사와 내력을 듣게 된다. 할머니와 증조모, 그리고 그들 곁에 살아갔던 여성들의 이야기를. 그것은 고통과 상처, 회한으로 버무려져 있으나, 그들은 그 기억을 부질없는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 내 몸과 삶 안에는 내가 만나고 더불어 살아온 이들의 사랑과 기억이 흐르고 있다. 그것이 결국 오해와 세월 속에 상처나고 빛바랜다 하더라도, 결국 그 사람이, 그 사랑이 나의 삶이고 역사인 것이다. 나를 넘어뜨렸다 다시 일으키는 사람, 지금은 만나지 못한대도 한 시절 어둠 속의 나를 환히 밝혀준 사람. 사람과 사랑은 어떤 경우에도 부질없지 않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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