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당시의 내가 친구들과 달랐던 점이 있다면 배구를 포기할 이유를 찾지 못했다는 것뿐이다. (…) 그래서 나는 기본기를 다지며 하루하루를 버텼고 그렇게 버틴 날들이 쌓이고 쌓여 실력이 되었다. 그 실력으로 프로의 문을 열었으며 코트 위에서 계속 점프할 수 있는 힘을 만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는 후회가 싫었다. 고민만 하다가 중도에 손을 놓아버린다면 후회가 남을 테지만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해봤고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되면 만약 일이 잘 풀리지 않았다 하더라도 홀가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어려운 상황에 맞닥뜨려도 기가 죽어 물러서기보다 내가 손에 쥐고 있는 아주 낮은 가능성이라도 붙들고 미련 없이 도전하고 싸우고 싶었다. (김연경, ‘아직 끝이 아니다’, 2017년 가연 펴냄)
김연경은 모든 면에서 타고난 배구선수처럼 보인다. 그러나 사실 중학생 때까지만 해도 또래 선수들에 비해 키가 작아 주목받는 선수는 아니었다. 당시 김연경의 꿈은 그저 ‘흰 네모’ 안에 들어가 경기를 뛰는 것이었다. 키 작은 또래 선수들은 일찌감치 여자 축구 등으로 종목을 바꾸기 시작했다. 하지만 김연경은 포기할 수가 없었다. 키가 작아서 스파이크나 블로킹에 약하다면 잽싸게 몸을 움직여 최강 수비수가 돼보기로 했다. 그보다 어린 후배들이 주전으로 뛰는 경기에서 벤치만 지켜야 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김연경은 벤치에서도 눈을 부릅뜨고 경기의 흐름을 읽고 작전을 세우는 눈을 길렀다.
김연경에게 기적이 일어난 것은 고등학교 진학 이후였다. 키 171㎝로 같은 학년 선수 중 최단신이었는데 일 년 새 183㎝가 됐고 이내 192㎝까지 쭉쭉 자랐다. 여기에 수비력과 리더십, 성실함까지 갖추었으니 김연경의 시대는 폭죽 터지듯이 세상을 울렸다. 도쿄 올림픽에서 “해보자, 해보자, 후회하지 말고”라고 외치던 김연경의 목소리는 비단 그 경기만을 향한 것이 아니었다. 매 경기가 그의 삶이고 전부였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