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년간 정부는 17번의 가계부채 대책을 발표했다. 이명박 정부는 첫 가계부채 대책이었던 2011년 6월을 시작으로 2번, 박근혜 정부는 2014년 2월 첫발을 내디딘 후 8번의 대책을 내놓았다. 문재인 정부에서 가계부채를 잡겠다고 내놓은 처방전도 2017년 10월을 시작으로 7번이나 된다.
결과는 어땠을까. 결과적으로 모두 실패였다. 2011년 대책은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으로 낮추겠다고 공언했다. 박근혜 정부도 이 수치를 5%포인트 낮추겠다고 했지만 상승 속도는 되레 가팔라졌다. 문재인 정부 들어서도 집값 급등에 결국 증가세가 목표치를 넘어섰고 7번의 대책에도 오히려 ‘대출절벽’이라는 초유의 상황에 맞닥뜨렸다.
부동산 실패, 文정부 총량관리 ‘위험수위’
정책 실패의 대가는 컸다. 22일 OECD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2011년(152.9%) 대비 37.7%포인트 상승했다. 장혜영 정의당 의원은 2020년 들어 이 수치가 200.7%까지 치솟았다고 추산했다. 쉽게 말해 벌어들이는 돈보다 빚이 1.5배 많았는데 10년 새 2배까지 늘어났다는 얘기다.
유독 우리나라의 증가세만 가파르다. 2011년 12위였던 순위가 2019년 6위까지 올라섰다. 실패의 원인은 간단하다. 대출 규제가 매번 부동산 정책에 휘둘렸기 때문이다.
현 정부도 총량 관리에 실패한 것은 마찬가지다. 문재인 정부는 2017년 10월 향후 가계부채 증가율을 8.2% 수준으로 유도하겠다고 발표했다. 2018년(5.9%)과 2019년(4.1%) 총량 관리에 성공하는가 싶었지만 지난해부터 불기 시작한 집값 급등세를 타고 올해 증가율은 다시 두 자릿수로 올라섰다.
올 4월 내놓은 추가 대책도 ‘공수표’가 될 공산이 크다. 금융 당국은 당시 올해 가계부채 증가율을 5~6%대로 낮추고 오는 2022년까지 4%대로 되돌리겠다고 밝혔다. 7월 가계부채 증가율은 10.0%(전년 동월 대비 기준)로 여전히 위험수위다.
실패 이유는 역시 부동산이었다. 정책 실패로 집값이 크게 뛰면서 덩달아 가계대출 규모도 커졌다. 대출을 강하게 죄겠다는 신호도 시장에 제대로 보내지 못했다. 지난해 말부터 가계부채가 급증하면서 금융 당국은 일찌감치 3월에 강력 대책을 발표하겠다고 예고했지만 지방선거를 앞두고 있던 탓에 일정이 4월 말로 밀렸다. 더욱이 여당의 요구로 청년층·신혼부부의 우대 혜택을 늘리는 내용을 담은 ‘엇박자’ 대책이 나오기도 했다.
뒤늦은 조이기, 은행·2금융권까지 대출 중단
문제는 금융 당국이 최근 뒤늦게 조이기에 나서면서 터졌다. 우선 대책 발표에도 집값 상승을 기대한 대출수요가 여전히 탄탄한 탓에 규제 사각지대인 1억 원 이하 신용대출이나 2금융권으로 수요가 몰렸다. 금융 당국은 이를 막기 위해 신용대출 한도를 연 소득 이내로 제한하는 등의 창구 지도 카드까지 뽑아든 상황이다. 은행권에 이를 적용한 후 최근 2금융권으로 조치를 확대했다.
이 와중에 ‘배짱’ 영업을 하던 NH농협은행 등 일부 은행이 금융 당국의 요청에 대출을 중단하는 사태도 벌어졌다. 실제로 NH농협은행은 19일 기준 가계대출 잔액이 전년 대비 7.3% 늘었다. 당국이 정한 올해 목표 증가율 5~6%를 훌쩍 넘어선다. SC제일은행도 일부 주택담보대출 상품 판매를 중단했고 우리은행 역시 한도가 소진한 전세자금대출을 9월 말까지 제한적으로 취급하기로 했다.
금융 당국의 한 관계자는 “늘어난 가계대출 증가액의 30%가 NH농협은행과 지역 단위 농협에서 나왔다”고 설명했다. 지역 농협을 관할하는 농협중앙회는 20일 금융위원회를 찾아 전국 농·축협의 집단대출을 일시 중단하고 이후 조합별로 목표치를 설정해 운영하며 현재 60%인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자체적으로 낮추겠다는 등의 관리 계획을 보고했다. 그러나 금융위는 농협중앙회의 계획이 미흡하고 구체성이 떨어진다며 이번 주초까지 보완을 요청했다.
금융 당국은 2금융권인 저축은행에도 신용대출 한도를 대출자의 연 소득 이내로 운영해달라고 요청하고 지역 농협에는 준조합원·비조합원에 대한 신규 대출을 일시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은행만 신용대출 한도를 제한할 경우 가계부채의 ‘양과 질’ 모두를 놓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으로 풀이된다. 금융감독원은 13일 은행 여신 담당 임원들에게 “DSR 규제를 받지 않는 1억 원 이하 신용대출 한도를 연봉의 2배 수준에서 1배 수준으로 낮추라”고 은행권에 권고했고 은행도 이를 받아들였다. 이에 대출 수요가 저축은행 등 2금융권으로 옮겨갈 수 있어 이를 차단하고 나선 것이다. 금감원은 대출 목표치를 초과했거나 근접한 저축은행은 경영진 면담을 통해 관리할 예정이다.
절반이 변동금리… 금리 상승시 ‘충격’
정부 대책의 실패는 고스란히 가계의 이자 부담으로 이어진다. 지난해 기준 전체 대출에서 고정금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49.7%다. 가계 둘 중 하나는 금리 상승의 사정권에 놓여 있는 셈이다. 한국은행은 금리가 1%포인트 상승하면 전체 가계의 이자 부담이 11조 8,000억 원 늘어날 것으로 추산했다.
최근 시중금리도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KB국민·신한·하나·우리은행 등 4대 시중은행의 신용대출 금리는 1년 새 1%포인트 가까이 상승했다. 코픽스 연동 주택담보대출 변동금리도 같은 기간 0.37%포인트 올랐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에 나서면 상승세는 더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