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해외칼럼] 공룡 관료기구의 비효율성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아프간 철군준비회의만 36차례

美 국가안보위 관료주의에 빠져

의견조율 세월 보내다 정책실패

바이든정부 회의 대신 행동할때

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파리드 자카리아 워싱턴포스트 칼럼니스트, CNN‘GPS’호스트




미국의 아프가니스탄 철군 작전이 혼란에 빠진 이유를 설명해주는 통계가 있다. 지난 4월 한 달 동안 백악관 국가안보위원회는 미군 철수 절차를 논의하기 위해 무려 36차례나 회의를 열었다. 주목해야 할 점은 국가안보위가 회의 횟수를 이례적으로 언론에 공개했다는 사실이다. 행정부가 철군 준비를 철저히 하고 있다는 점을 보여주려는 것이었다. 국가안보위를 비롯한 미국의 해외 정책 입안 기구는 사실상 뇌가 거의 없는 거대한 공룡으로 변했다. 한마디로 절차가 정책이 돼버린 관료 기구가 된 셈이다.

회의가 많아질수록 기구의 효율성은 떨어진다.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국토안보보좌관으로 활동했던 프랜시스 타운젠드의 지적대로 실무자들은 온종일 회의실에서 모여 앉아 시간을 보낸다. 몇 시간씩 계속되는 회의에 불려 다니다 보면 다른 일을 할 겨를이 없다. 정책을 집행하기보다 회의실에서 떠드는 데 모든 시간을 사용한다는 얘기다. 이러다 보니 회의 준비와 메모가 효과적인 행동을 대신하게 된다. 월스트리트저널은 아프간 철군 결정 과정을 이렇게 묘사한다. ‘행정부는 수개월에 걸쳐 회의를 거듭했다…(그러나) 관련 기구들이 아프간의 권력 교체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에 관한 지침은 전혀 나오지 않았다.’



미국은 거대한 관료주의 체제로 냉전을 치렀다. 당시 최상부는 소수 정예로 채워졌고 전체 조직은 거대해도 효율적으로 돌아갔다. 헨리 키신저가 만들어낸 현대적 국가안보위 인원은 50명에 불과했다. 그러나 2000년에 접어들면서 100명으로 늘어났다. 조지 W 부시 집권 8년간 다시 두 배가 증가했고 버락 오바마 대통령 재임 기간 동안 또 두 배로 몸집이 커졌다. 도널드 트럼프가 기구를 축소했지만 조 바이든 대통령은 350명으로 되돌려놓았다. 이로 인해 국가안보위 기구 내부는 복잡하기 그지없는 구조가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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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규모 조직의 경우 실질적인 정책 결정보다 부서들 간 이견을 조율하는 것이 더 어렵다. 이처럼 복잡한 기구는 정보를 내부에서 생성한다. 외부에서 들어오는 정보는 없다. 이런 현실이 미국 정부로 하여금 지난 20년간 아프간에서 진정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는 환상에 빠지게 했다. 특히 아프간 정부군이 힘과 효율성 면에서 커다란 진전을 이루고 있다고 굳게 믿었다.

아프간 정책이 실패한 것으로 확실히 드러난 지금 워싱턴의 모든 관련 기관들은 그들의 잘못이 아니라는 주장과 함께 이를 뒷받침해줄 증거 자료를 언론에 유출한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국방부가 어떤 말을 했는지 보자. 2011년 당시 미 육군 중장으로 아프간 정부군 훈련 담당 사령관이었던 윌리엄 콜드웰 IV는 아프간군이 최상의 훈련을 받고 있고 최상의 장비와 최상의 지도자를 두루 갖췄다며 “시간이 지날수록 확실한 정예군으로 다듬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2년 뒤 마크 밀리 당시 아프간 주둔 미군 부사령관은 “아프간 보안군이 계속 지금처럼만 하면 반드시 좋은 결과가 나올 것으로 낙관한다”고 장담했다.

오바마의 2009~2012 미군 증파는 성공작으로 평가됐다. 그러나 2015년 탈레반은 아프간 개전 이후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지역을 장악했다.

상당수의 내부자는 미국이 패배할 것임을 일찌감치 깨달았으나 이 같은 정보는 수십 겹의 울타리로 둘러싸인 관료제 속에서 사장됐다. 워싱턴포스트는 특별 탐사 보도 프로젝트인 ‘아프간 백서’ 취재 과정에서 담당 관리들은 아프간의 미래를 묻는 기자들의 집요한 질문에 개인적으로 회의감을 표시했지만 ‘공식적인 대답’은 장밋빛이었다고 밝혔다. 아프간 반군 대책 선임보좌관으로 활동한 밥 크롤리는 “정부 조사관들에게 가능한 최상의 그림을 제시하기 위해 모든 정보에 손을 댔다”고 털어놓았다. 싱크탱크인 브루킹스의 아프간 전문가 마이클 오한론은 탈영과 전사 등의 이유로 아프간군의 연간 손실률이 20~30%에 달한다는 사실을 확인했으나 이 정보도 관료 시스템의 벽을 뚫지 못했다. 아프간 재건 작업 특별감사실 역시 아프간 병력이 공식적으로 밝힌 30만 명의 절반도 안 되는 12만 명에 불과하다는 AP통신 보도를 인용하며 ‘유령 군인’의 문제점을 수차례에 걸쳐 보고했지만 허사였다.

아프간 철수 1단계는 실패였다. 하지만 수십만 명의 미국인과 아프간인을 대피시키는 2단계 작업은 성공의 가능성이 열려 있다. 데이비드 로드가 뉴요커 기고문을 통해 지적했듯 소개 작업은 효율적인 조치가 나오지 않고 있는 가운데 혼란에 휩싸인 상태다. 바이든 행정부는 철수 작전을 성공적으로 마무리 지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는 회의를 중단하고 행동을 개시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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