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상미술을 대표하는 화가 이우환(85)이 국내 생존작가 중 처음으로 경매 낙찰가 30억 원을 넘어섰다.
지난 24일 서울옥션(063170) 강남센터에서 열린 제 162회 서울옥션 경매에서 이우환의 1984년작 227×183㎝ 크기의 ‘동풍(East Winds)’이 31억 원에 새 주인을 찾아갔다. 이는 지난 6월 경매에서 낙찰된 이우환의 1975년작 ‘점으로부터(From Point)’가 세운 22억 원을 단 2개월 만에 뛰어넘은 작가 최고가 기록이기도 하다.
이번 낙찰작 ‘동풍’은 2019년 10월 서울옥션 홍콩경매에서 약 20억7,000만 원(1,350만 홍콩달러)에 팔렸던 동일 작품으로, 2년도 안 돼 그림값이 10억 원 가량 상승했다. 생존작가라 양도세는 없다.
이우환은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 김환기의 완성도와 ‘세계적 아티스트’ 백남준의 국제적 명성을 모두 지닌 작가로 평가되는 대표적 ‘블루칩’이다. 지난해에는 코로나19로 30억 원 이상 초고가 미술품 거래가 위축된 틈을 타 김환기를 제치고 작가 별 낙찰 총액 1위(약 149억7,000만원)에 올랐다. 올해는 코로나 이후 문화 향유에 대한 ‘보복 소비’ 추세에 더해 시중의 풍부한 유동성이 미술 시장으로 눈을 돌리는 호황 국면이 이어지는 가운데 상반기 경매에서만 총 187억 원 어치를 판매해 1위 작가의 위엄을 확실히 다졌다.
그간 이우환 작품은 2012년 홍콩경매에서 3폭 1세트 ‘점으로부터’가 21억3,000만 원(1,520만 홍콩달러)에 팔린 이후 최고가 수준이 20억 원 대 박스권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형국이었다. 2014년 소더비 뉴욕경매에서 1976년작 ‘선으로부터’가 수수료 포함 약 25억 원에 팔린 정도다. 더욱이 위작 유통 의혹이 제기되면서 ‘점’ ‘선’ 연작의 거래는 위축될 수밖에 없었는데, 그 사이에 저평가 됐던 ‘바람’시리즈가 각광받기 시작했다. 위작 위험성을 피하기 위해 비교적 공개 검증된 시장인 경매 쪽으로 수요가 쏠리는 경향도 나타났다. 방탄소년단(BTS)의 RM이 부산시립미술관의 이우환공간을 다녀가면서 ‘바람’시리즈에 대한 각별한 애정을 드러내 대중적 인지도도 올라갔다. 양정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는 “이우환의 ‘바람’ 연작은 회화적 표현력이 보다 풍부하고 관객이 감상하기도 더 쉬운 측면이 있다”면서 “절제를 추구하는 작가의 예술론이 견고하면서도 회화가 갖는 필획과 움직임의 독특한 맛이 잘 살아난 작품들”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옥션은 이날 경매에서 낙찰 총액 203억 원, 낙찰률 86.3%를 기록하며 지난 6월(243억원)에 이어 올해만 두 번째로 낙찰액 200억 원을 돌파했다. 이날 최고가 낙찰작은 김환기의 희소가치 높은 붉은 점화 ‘1-Ⅶ-71 #207’로, 40억 원에 팔렸다.
25일 겅남구 신사동 케이옥션 사옥에서 열린 경매에서는 김환기의 희귀한 1930년대 작품이 나와 2억원에 팔렸다. 1960년대 작품들이 각각 5억1.000만원, 3억7.000만원에 낙찰됐다. 이우환의 ‘대화(dialogue)’는 경합 끝에 7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케이옥션에서는 하종현의 작품이 작가 최고가인 4억1,000만원에 팔렸다.
한편 젊은 인기작가들의 열풍도 뜨겁다. 시작가 3,000만 원의 우국원 작품이 1억5,000만원에 낙찰된 것을 비롯해 450만 원 시작가에 경합이 붙어 4,000만 원에 팔린 문형태, 1,000만 원에 시작해 7,900만 원에 낙찰된 김선우 등의 약진이 눈에 띄었다. 지난 2007년 호황기 때 안성하·홍경택·김동유 등 극사실주의와 정교한 기법의 젊은 작가들이 주목받은 것과 비교해 이번 호황기에는 표현주의적 경향, 캐릭터의 부각 등이 달라진 수요로 포착된다. MZ세대를 중심으로 한 미술 소비의 세대 교체가 반영된 추세다.
#기자페이지를 구독하시면 미술과 미술시장, 문화재에 대한 뉴스를 쉽게 받아보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