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치·사회

탈레반, 카불 점령 직후 IS 지도자 사살... ‘폭탄 테러’ 전조였나

2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 외곽에서 발생한 연쇄 자살폭탄 테러로 부상한 여성들이 치료를 위해 인근 병원에 도착하고 있다. /AFP연합뉴스26일(현지시간)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 공항 외곽에서 발생한 연쇄 자살폭탄 테러로 부상한 여성들이 치료를 위해 인근 병원에 도착하고 있다. /AFP연합뉴스




극단주의 무장세력 이슬람국가(IS)가 카불 공항에서 100여명의 사망자를 낸 폭탄 테러를 자행한 가운데,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수도 카불을 점령할 당시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IS 핵심 지도자를 사살한 것으로 나타났다. IS가 미국의 철수에도 불구하고 탈레반과 대립각을 세우며 탈레반의 아프간 점령을 환영하지 않았던 데는 ‘속사정’이 있었던 셈이다. 카불 공항 일대를 ‘아비규환’으로 만든 이번 테러에 양 세력 간 앙숙 관계도 한몫 했다는 분석이다.


탈레반, 수감 중인 IS 최고 지휘관 살해


미 월스트리트저널(WSJ)은 26일(이하 현지 시간) 탈레반이 카불을 점령한 지난 15일께 교도소에 있던 수백명의 수감자들을 풀어주는 과정에서 아프간 IS 지도자인 아부 오마르 코라사니를 사살했다고 보도했다. 코라사니 조직원 8명도 그와 함께 살해 당했다. IS의 남아시아 최고 지휘관인 코라사니는 지난해 5월 아프간 보안군한테 체포돼 카불 교도소에 수감됐다.



코라사니는 사망 며칠 전 WSJ와 인터뷰하며 “탈레반 약진은 (아프간) 변화의 전조"라며 "그들이(탈레반) ‘좋은 무슬림’이라면 분명 나를 풀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파죽지세로 주요 지역을 점령하며 아프간을 장악해갔던 탈레반에 기대를 나타낸 것이다. 그러나 불과 며칠 만에 그 기대는 산산이 부서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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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SJ는 탈레반의 코라사니 살해가 아프간 내 무장단체 간 역학관계를 나타낸다고 분석했다. 지난 2001년 9·11 테러를 일으킨 알카에다는 당초 탈레반을 ‘(이슬람 경전인) 코란을 이해하지 못하는 문맹’이라 일컬으며 무시하기 일쑤였다. 탈레반 역시 알카에다가 서방과 말썽을 일으켜 자신들을 고립시키고 있다며 비판했다. 그러나 9·11 테러 이후 미국과 연합군이 아프간 전쟁을 일으키면서 탈레반과 알카에다는 자연스럽게 공조를 이뤄 서방과 대치하게 됐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폭탄 테러와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하던 도중 발언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카불 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를 이슬람국가(IS)의 지부를 자처하는 IS 호라산(IS-K)의 소행이라고 지목하고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6일(현지시간) 워싱턴DC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아프가니스탄 카불 공항 폭탄 테러와 관련해 대국민 연설을 하던 도중 발언을 잠시 멈추고 고개를 숙이고 있다. 바이든 대통령은 이날 카불 공항 인근에서 발생한 자살 폭탄 테러를 이슬람국가(IS)의 지부를 자처하는 IS 호라산(IS-K)의 소행이라고 지목하고 "끝까지 추적해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며 강경 대응 천명했다. /AP연합뉴스


“IS 테러, 아프간 전쟁 망령 되살려”


그러나 2015년 알카에다가 세력이 다소 약해진 틈을 타 두각을 나타낸 IS는 탈레반과 사이가 좋지 않았다. WSJ는 “IS는 아프간 호라산 지역에 거점을 마련하고 지도부에 불만을 품은 탈레반 대원을 비롯해 중앙·남아시아 무장단체 조직원들을 끌어 모았다”고 전했다. 시리아와 이라크에서도 IS에 들어오겠다는 자원자가 몰렸다.

탈레반은 IS를 방해물이라고 인식했다는 설명이다. 코라사니는 사망 전 WSJ와 한 인터뷰에서 “IS는 국제사회에 자신들의 뜻을 관철하려 했지만, 탈레반은 아프간을 되찾는 데만 신경을 썼을 뿐 아프간 외부 이슬람 단체들을 돕는 데 관심이 없었다”고 말했다.

결국 이 같은 대립 관계가 미국의 철수를 기점으로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고, 이날 끔찍한 카불 공항 테러의 원인 가운데 하나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WSJ는 “카불 공항 테러는 아프간 내에서 더 길고 피비린내 나는 전쟁의 망령을 불러 일으켰다”고 논평했다.


조양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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