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주요 금융사 최고경영자(CEO) 중 92%가 금융 당국의 규제를 과도하다고 보는 것으로 조사됐다. 정부는 그동안 금융사 경영에 간섭하고 감독 규정에도 없는 ‘그림자 규제(법적 근거 없는 비공식적인 행정 규제)’를 가하는 ‘관치’를 지양하겠다고 공언해왔다. 하지만 일선 현장 CEO들은 피부로 느끼는 변화가 거의 없고 문재인 정부 들어 오히려 정치·관치 금융이 심화하고 있다고 본 셈이다. 새 금융위원장이 지명되며 당국이 고강도 대출 규제를 가하는 가운데 ‘시장의 자율을 현저히 침해하는 정책’을 묻는 질문에 ‘가계대출 총량 규제’라고 답한 비율도 세 번째로 많았다.
29일 서울경제가 ‘리빌딩 파이낸스 2021-초불확실성, 컨버전스로 넘어라’ 기획으로 국내 국책·시중·지방은행(14명), 인터넷은행(2명), 카드(8명), 보험(9명), 빅테크(2명), 저축은행(3명) 등 금융사 CEO 38명에게 설문조사를 실시한 결과 정부와 정치권의 규제가 심하다는 응답이 90% 안팎을 기록했다.
‘금융 당국의 규제 강도가 과거와 비교할 때 어느 정도 수준인가’라는 질문에 ‘영역이 축소되기는 했으나 여전히 많다’ 혹은 ‘모든 영역에서 관치가 매우 심해졌다’는 응답이 92.1%에 달했다. 세부적으로 영역이 축소됐지만 여전히 많다는 답이 63.2%로 가장 많았고 모든 영역에서 관치가 매우 심해졌다는 대답도 28.9%를 기록했다. ‘변화 없다’는 7.9%였고 ‘필요한 규제만 남은 정도’와 ‘전혀 없이 자율 경영이 되고 있다’는 대답은 아예 없었다(0%).
정치권의 금융 개입, 이른바 ‘정치 금융’에 대해서도 86.9%가 심하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구체적으로 47.4%가 영역이 축소되기는 했지만 여전히 많다고 했고 39.5%는 모든 영역에서 매우 심해졌다고 대답했다. 정부 규제가 ‘심해졌다’는 대답이 28.9%였지만 정치 금융은 그보다 10%포인트 이상 높았다. ‘변화가 없다’는 대답은 13.2%였고 ‘필요한 규제만 남은 정도’나 ‘전혀 없이 자율 경영이 되고 있다’는 대답은 없었다.
금융사는 특히 어떤 규제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을까. ‘정부의 금융 정책 중 시장 자율을 현저히 침해하는 정책은’이라는 물음(최대 3개 복수 응답)에 ‘최고 금리 연속 인하’가 47.4%, ‘카드 수수료 인하’가 42.1%, ‘가계대출 총량 규제’가 39.5%로 1~3위를 차지했다. 조사는 금융 당국의 고강도 대출 총량 규제가 본격화하기 전인 지난 10~18일 진행돼 총량 규제에 부담을 느끼는 정도는 이후 더 올라갔을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