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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응천 이사장 "해외 문화재는 '말 없는 외교관'...환수 넘어 현지 활용 나설 것"

■[서경이 만난 사람]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내년 재단 10주년 맞아 유·무형 유산부터 건축물까지 발굴 확대

국외 문화재 20만여점…경매 매입 기증 유도 40건 756점 환수

치밀한 사전작업, 전략적 접근은 필수…유관 부처와 협력 절실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이호재 기자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이호재 기자




지난 2011년 2월, 프랑스로 유출된 조선의 외규장각 도서 297책이 145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왔다. 1866년 병인양요 때 강화도를 침략한 프랑스 함대가 외규장각에서 의궤·어새 등과 함께 약탈해간 서적을 재불 역사학자 박병선(1929~2011) 박사가 프랑스국립도서관 수장고 한구석에서 발견해 ‘환수’를 주장한 지 32년 만의 일이었다. 울분의 세월을 청산하고 민족과 국가의 자존감을 되찾은 상징적 성과에 국민들은 열광했다. 민간의 노력과 정부의 물밑 작업이 힘을 합쳐 귀중한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오기까지 수십 년이 걸렸음이 알려지자 이러한 일을 수행할 전담 기구 설립의 필요성이 대두됐고, 이듬해인 2012년 7월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세워졌다.



“프랑스가 약탈해간 문화재의 환수 과정을 지켜보면서 민간 차원을 넘어 국가가 나서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됐고, 그 당위성 아래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설립됐습니다. 내년 재단 설립 10주년을 맞아 이제는 유형 뿐 아니라 무형·부동산 문화재까지 정책적으로 살피고, 불법 반출되거나 외국에서 유실된 문화재를 환수하는 업무를 넘어 외국 현지에서의 우리 문화재 활용에도 더 적극적으로 나설 계획입니다. 해외의 우리 문화재는 문화를 선양하는 말 없는 외교관들이니까요.”

최응천(사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최근 서울 마포구 상암동 재단 이사장실에서 가진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이같이 말하며 설립 이래 재단이 일군 성과와 과제, 앞으로 전개할 국외 소재 문화재 관리에 대한 계획을 밝혔다. /대담=신경립 문화부장 klsin@sedaily.com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이호재 기자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이호재 기자


미국 뉴욕의 경매에서 해태 닮은 사자 모양의 동제(銅製) 인장과 함께 찾아낸 조선 순조의 딸이자 조선의 마지막 공주 덕온공주(1822~1844)의 친필 서신들, 봉은사에 모셔져 있었으나 1950~1960년대 외국으로 유출돼 경매를 통해 되찾은 18세기 걸작 불화 ‘봉은사 시왕도’, 독일의 수도원 박물관으로부터 기증 형식으로 돌려받은 전 세계에 10벌도 남지 않은 18세기 보병 갑옷 면피갑(綿皮甲·면직물로 된 갑옷)…. 모두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이 환수한 대표적인 우리 문화재들이다.

재단 정문 안쪽 복도에는 이들을 포함해 재단이 되찾은 유물의 사진들이 걸려 있다. 단원 김홍도의 스승이기도 한 표암 강세황의 증손 ‘강노 초상’은 어느 미국인이 소장하다 온라인 경매에 내놓은 것을 재단이 환수한 것으로, 6대에 걸친 진주 강 씨 집안 초상화의 연대별 맥락에서 핵심 연결고리가 됐다. 미국 워싱턴DC의 주미대한제국공사관은 미국과 수교한 조선이 1889년 서양에 처음 설치해 1905년 일제에 외교권을 빼앗기기까지 주권국가의 자부심을 떨쳤던 외교 공관이다. 문화재청이 2012년 재매입했고, 운영을 맡은 재단 측이 사진과 문헌을 토대로 대한제국 시기 원형을 복원했다.

“국외 소재 문화재는 ‘외국에 소재하는 문화재로서 대한민국과 역사적·문화적으로 직접적 관련이 있는 것’으로 문화재보호법 제2조 제9항에 명시돼 있습니다. 불법·부당하게 국외로 유출된 문화재는 제자리를 찾도록 ‘환수’를 추진하고, 문화 교류나 정당한 거래에 따라 합법적으로 반출된 문화재는 현지에서 최대한 활용하도록 다양한 지원 사업을 펴는 것이 재단의 역할입니다.”

그간 재단은 총 40건, 756점의 우리 문화재를 되찾아왔다. 현재까지 재단이 파악한 국외 소재 문화재는 22개국, 735개처에 약 20만 4,693점. 매년 실태 조사를 할 때마다 평균 1만 점씩 그 수가 늘어나는 것은 재단이 새롭게 발굴해낸 문화재가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이호재 기자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이호재 기자



최 이사장은 “2013년 재단의 첫 환수 유물이 된 ‘석가삼존도’부터 가장 최근의 정조 때 그려진 청나라 황제의 사냥 그림 ‘호렵도 팔폭병풍’까지 모든 문화재가 귀한 의미와 각자의 사연을 갖는다”고 환수 문화재에 대해 설명했다. 그래도 유독 마음에 남는 유물들이 있다. ‘분청사기상감 경태5년명 이선제묘지(이하 이선제 묘지)’는 광산 이 씨 문중에서 이장할 때 비로소 불법 도굴된 사실을 알아냈는데, 일본 문화재 시장을 조사하고 반출 경위를 확인한 후 일본인 소장자를 오래 설득해 기증을 끌어낸 것이라 “보람이 남다르다”고 최 이사장은 돌아봤다. ‘이선제 묘지’는 희소성을 인정받아 환수 이듬해인 2018년에 국가 지정 문화재 보물로 지정됐고 현재 국립광주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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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900년 만에 환수가 이뤄진 ‘나전국화넝쿨무늬합’은 특히 최 이사장과의 인연이 각별하다. 정교한 고려 문화를 칭하는 ‘세밀가귀’의 주인공인 나전칠기는 전 세계에 20여 점만 전하고 종주국인 한국에는 겨우 2점만 남아 있어 아쉬움이 컸다. 최 이사장은 “2006년 박물관에 근무할 때 나전칠기 특별전을 준비하며 일본인 소장가에게 대여받아 전시했던 작품”이라며 “어렵게 소장가의 마음을 움직여 환수에 성공했고 15년 묵은 숙원을 풀었다”고 말했다.

문화재 환수 소식은 국민의 문화적 자부심을 끌어올리는 일이지만 외국에 있는 문화재가 모두 환수 대상이 아닌 데다 비용 지불이 능사는 아니기에 재단 업무는 까다롭다. 최 이사장은 “불법 반출인지 외교적 교류였는지 출처 조사가 우선이고, 이후에 매입·반환·기증 등의 방법을 결정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불법 반출된 문화재의 경우 관계 당국과 공조한 ‘환수’가 우선이고, 경매에 나와 제3국 반출 등의 위험이 있거나 국가 차원의 매입이 필요하다는 여론이 형성된 문화재는 긴급 매입 대상으로 선정된다.

꼭 되찾아야 할 유물이 무엇인지 묻자 “목록이 있지만 불필요한 경쟁이 우려되니 절대 말할 수 없다”며 입을 다물었다. 유물의 존재가 알려져서 외부 관심이 커지면 경쟁이 붙어 가격까지 치솟기 때문이다. 특히 7만 점 이상의 국외 소재 문화재를 안고 있는 일본의 경우 기증과 반환을 강권할까 봐 폐쇄적인 입장이라 한국인의 문화재 조사도 환수를 위한 사전 작업으로 알고 경계하는 경우가 잦다고 한다. 최 이사장은 “안휘준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초대 이사장이 ‘문화재는 먹이를 노리는 사자처럼 살금살금 발톱을 감추고 접근해 단숨에 낚아채야 한다’는 말씀으로 전략적 접근과 치밀한 사전 작업을 강조하셨는데 그것이 환수의 정석”이라고 강조했다.

재단 설립 10주년을 준비하는 최 이사장은 지금까지 환수에 집중됐던 재단의 역할을 부동산 문화재 발굴 및 문화재의 현지 활용으로 더욱 확장할 계획이다.

“외국에 소재한 역사 건축물이나 장소도 ‘국외 소재 문화재’로 대거 확대됐습니다. 독일에서 활동한 근대기 문학가 이미륵 유적지에 공공 기념물을 설치했고 윤동주 시인의 일본 내 활동지를 조사했으며, 미국 LA 지역의 독립운동 사적지 탐방로 개발 사업을 진행했습니다. 기금을 활용해 외국 현지 박물관에 한국실 설치를 제안하고 한국 문화재를 매입하도록 장려하거나 우리 문화재를 대여해주기도 합니다. 국내뿐 아니라 국외에서도 우리 문화의 자부심을 보여주는 일이니까요. 파악되지 않은 근대기 예술가들의 잊혀진 흔적을 발굴하는 데도 더욱 공을 들이고자 합니다.” 물론 이 같은 과정에서 문화체육관광부와 문화재청의 조력은 필수이고 불법 반출 문화재에 대한 외교부의 외교적 접근, 국제교류재단과의 협력 등이 절실하다.

“내년 10주년을 앞두고 나전칠기부터 불화, 조선 병사의 갑옷과 마지막 공주의 편지까지 우리 재단 환수 유물을 한자리에 전시하고자 합니다. 수백 년 역사와 함께 국민들이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요.”

■He is…

△1959년 서울 △1978년 동국대부속고등학교 졸업 △1982년 동국대 불교미술과 학사 △1983년 국립중앙박물관 미술부 입사 △1987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사 △1988년 홍익대 미술사학과 석사 △1993년 국립중앙박물관 학예연구관 △2002~2005년 국립춘천박물관 초대 관장 △2007년 일본 규슈대 미술사 박사 △2005~2008년 국립중앙박물관 초대 전시팀장, 초대 아시아부장, 미술부장 △2008년~ 동국대 대학원 미술사학과 교수 △2009~2017년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2015년 일본 다이쇼대 객원교수 △2019년~ 한국미술사교육학회 회장 △2019년~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


정리=조상인 기자·사진=이호재 기자·신경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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