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험 공부를 하는데, 시험이 언제인지 모르는 기분이었다.”
피아니스트 조성진에게도 기약 없는 무대를 기다리는 마음은 여느 누구와 마찬가지로 착잡하고 또 괴로웠다. 긴 기다림을 마치고 관객과의 만남을 앞둔 연주자는 여전히 어려운 시기 열게 된 독주회를 앞두고 “(관객 앞에서) 연주할 수 있게 돼 정말 감사하다”며 기대감을 드러냈다.
조성진은 3일 서울 예술의전당 인춘아트홀에서 열린 음반 발매 및 독주회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피아니스트로서 활동하면서 연주를 당연하게 생각했는데, 코로나 19를 계기로 연주하는 게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를 새삼 깨닫게 됐다”며 공연을 앞둔 소감을 전했다. 조성진은 지난해 10~11월 국내에서 전국 투어 공연을 펼쳤으나 코로나 19 확산으로 예정됐던 서울에서의 마지막 앙코르 공연을 취소해야 했다.
조성진은 지난 27일 두 번째 쇼팽 앨범인 ‘쇼팽 피아노 협주곡 2번·스케르초’를 발매한 데 이어 4일 전주를 시작으로 5일 대구, 7일 서울, 8일 인천 등 7개 도시 전국 투어를 펼친다. 18일에는 서울에서 여는 앙코르 공연은 네이버TV로도 실황 중계(유료)된다.
이번에 내놓은 신보는 2015년 쇼팽 콩쿠르 우승 직후인 2016년 이후 5년 만에 선보이는 두 번째 쇼팽 앨범이다. “한동안 의식적으로 다른 작곡가의 곡을 녹음했다”는 그는 “2018년 말쯤 5년 정도 지난 시점이면 다시 해도 되겠다 싶어 음반을 논의했다”고 전했다. ‘쇼팽 콩쿠르 우승자’라는 타이틀은 분명 영광스러운 왕관이었지만, 연주자 본인은 “자칫 쇼팽 스페셜리스트로 각인될 수 있다”는 마음에 의식적으로 다른 작곡가의 곡을 녹음하고 연주했다.
이번 독주회의 메인 연주곡은 최근 투어 프로그램으로는 선보인 적 없는 쇼팽의 스케르초 전곡(4곡)으로 앨범에도 수록된 곡이다. 스케르초는 조성진의 연주 인생에서 남다른 의미를 지닌다. 그는 “2007년 스케르초 2번을 연주하는 것을 보러 온 (스승인) 신수정 교수님과 인연이 시작됐고, 2009년 역시 같은 곡을 연주하며 정명훈 선생님과 인연이 생겼다”고 말했다. 2015년 쇼팽 콩쿠르 당시 세미 파이널 마지막 곡으로 연주한 것도 같은 곡이다. 조성진은 쇼팽의 스케르초에 대해 “네 개의 작품이 서로 매우 다르지만 각 스케르초에 존재하는 선명한 대비 때문에 한데 모아놓으면 잘 어우러진다”며 “콘서트에서 하나의 사이클로 묶어서 연주하곤 했다”라고 전했다.
독주회 2부에 선보일 쇼팽 스케르초 외에도 새로운 작품으로 프로그램을 한층 풍성하게 했다. 1부 첫 곡은 체코 작곡가 레오시 야나체크의 피아노 소나타 1번 ‘1905년 10월 1일’이다.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걸작을 소개하는 것을 즐긴다고 말했던 조성진은 “앞으로 야나체크의 소나타를 시작으로 많이 연주 안 되는 헨델 작품 등을 선보이고 싶다”는 바람을 전했다. 두 번째 곡은 라벨의 밤의 가스파르다. “내가 연주한 솔로 곡 중 테크닉 적으로 가장 어려운 곡”이라고 소개한 조성진은 “어려운 걸로 유명해 사람들이 이 작품의 음악적 특별함을 잘 인지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아쉬움을 전한 뒤 “음악적으로도 ‘거의 완벽한 이 곡’을 앞으로도 많이 연주하고 싶다”고 말했다. 이어 “나이 들어서는 못 할 것 같다”며 “젊었을 때 많이 연주하고 싶은 곡”이라고 웃어보였다.
‘최정상’의 수식어가 따라붙는 연주자이지만, 본인은 “음악가로서의 성공·완성을 말하기 어려운 것 같다”고 말했다. 마흔이 되고, 쉰이 되어도 여전히 배워가는 입장일 것 같다는 그는 “‘이 정도면 완성됐다’고 하는 순간부터 발전은 없다고 생각한다”고 자신의 생각을 전했다. 조성진은 “내년부터는 코로나 상황이 나아져서 계획된 연주를 다 할 수 있었으면 한다”며 “내년 3월 미국 투어와 11월 한국 공연 등을 예정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19일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펼쳐질 앙코르 공연은 네이버TV로 실황 중계된다. 조성진의 국내 공연이 실황 중계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