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이 구속영장 심사 단계에서 일정 조건을 충족할 경우 석방하는 ‘조건부 석방제도’를 추진한다. 법원이 피의자에 대한 구속영장 심사 단계에서 발부나 기각 외에 다른 판단을 할 수 있도록 제도를 바꾸는 것은 약 60년 만에 처음이다.
대법원은 8일 서울 서초동 대법원 청사에서 사법행정자문회의(자문회의) 제15차 회의를 열고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 등에 대해 논의했다. 이날 회의에서 뜻을 모은 건 조건부 석방제도를 도입하는 게 헌법상 무죄추정의 원칙에 부합한다는 점이다. 헌법 27조 4항에서는 ‘형사 피고인인 유죄의 판결이 확정될 때까지는 무죄로 추정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또 제도의 도입이 ‘헌법상 기본권을 제한하는 구속 수사는 수사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 최소한의 범위에서 이뤄져야 한다’는 불구속 수사 원칙에도 충족한다고 판단했다.
자문회의는 형사소송법 98조(보석의 조건)에 따라 선택적으로 허용한다는 방침이다. 또 구속영장을 발부한다는 판단과 동시에 조건부 석방 여부를 결정한다. 대신 검찰이 석방 조건 등에 대해 의견을 진술할 수 있는 부분도 명문화한다. 검찰이 조건부 석방을 신청하는 건 제한하나 최소한 의견은 제시할 수 있도록 길을 열어준다는 것이다. 이외에도 조건부 석방 조건을 다툴 수 있는 항고제도나 비금전적 조건도 적용하는 방안을 도입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자문회의는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에 앞서 석방 조건의 종류·적절성 등 세부 내용을 재판제도 분과위원회에서 추가 검토하도록 지시했다.
자문회의는 조건부 석방제도 도입을 위해 앞서 3월과 4월 두 차례에 걸쳐 논의했다. 또 법관과 법원 공무원, 대한변호사협회 회원(변호사), 한국형사법학회 회원을 대상으로 지난 5월 3일부터 10일까지 설문 조사를 진행한 결과 70%가량이 찬성했다. 무죄추정의 원칙과 불구속 수사 원칙에 부합한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일부는 처벌이 약해진다는 인식이 있다는 이유로 반대 의견을 제시했다. 또 판사 재량권이 확대돼 자의적으로 운영되거나 영장을 기각해야 하는 사건에서 오히려 법원이 조건부 석방을 명하는 등 변형적 형태로 운영될 수 있다는 점도 우려 요인으로 꼽혔다.
한편 이날 회의에서는 법관 임용 개선 방안 등을 연구·검토하는 법조일원화제도 분과위원회를 설치하기로 했다. 법원행정처 내에 사법지원총괄심의관을 팀장으로 하는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하는 구조다. 현행 법원조직법은 법관 임용 시 필요한 최소 법조 경력을 올해까지는 5년으로 하고 2022년부터 2025년까지는 7년, 2026년부터는 최소 10년으로 규정하도록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