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순복음교회 설립자 조용기 목사가 14일 별세했다. 향년 86세.
여의도순복음교회는 이날 오전 7시13분 조 목사가 서울대병원에서 별세했다고 밝혔다. 조 목사는 지난해 7월 뇌출혈로 쓰러진 후 1년 넘게 병원에 입원해 치료를 받아왔다.
조 목사는 1936년 경남 울산 울주군에서 부친 조두천 장로와 모친 김복선 권사의 5남 4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1950년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 입후보한 부친이 낙선한 뒤로는 가난한 사춘기를 보냈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부산에서 피난살이를 했다. 이후 조 목사는 부산공고에 입학해 학교에 주둔해 있던 미군부대에서 학교장과 미군 부대장 사이의 통역을 맡으면서 영어 실력을 키웠다.
고인은 고등학교 2학년 때 폐결핵으로 사망선고를 받고 병상에서 처음 복음을 접한 뒤 부산에서 미국의 오순절교단인 하나님의성회 소속 켄 타이스 선교사를 만나 신학교 입학을 결심했다. 1956년 하나님의성회 순복음신학교에 입학해 고(故)최자실 목사와 만났다. 두 사람은 1958년 신학교를 졸업하고, 그해 5월 서울 은평구 불광동에 여의도순복음교회의 전신인 천막교회를 개척했다. 최 목사는 고인의 장모다.
여의도순복음교회는 폭발적인 성장으로 1993년 교인 수 70만명을 넘어서며 단일 교회로는 세계 최대의 교회 기네스북에 등재되기도 했다. 조 목사는 1992년부터 2008년까지 세계하나님의성회 총재를 역임하면서 제3세계 선교활동에 집중해왔다. 특히, 1997년 브라질 상파울루에서 가진 성회에서는 150만명이 운집해 개신교 사상 최대의 집회라는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조 목사는 “만 70세가 되면 은퇴하겠다”는 약속에 따라 2009년 여의도순복음교회 담임목사직에서 물러났다. 후임으로는 차기 담임목사 선정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해 성도들의 투표로 이영훈 목사가 선출됐다. ‘부자 세습’이라는 관행을 깬 민주적 승계는 교계는 물론 사회적으로 큰 영향력을 끼쳤다.
빈소는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순복음교회 베다니홀에 마련되며, 조문은 15일 오전 7시부터다. 장례는 18일 오전 8시 한국교회장으로 치러지며, 장례위원장은 한국교회총연합 대표회장 장종현·이철·소강석 목사가 맡는다. 장지는 파주시 오산리최자실국제금식기도원 묘원이다. 유족으로는 희준, 민제, 승제 세 아들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