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잠재성장률 2%인데...탄소중립 속도전에 GDP 매년 0.32%P↓

[기후변화 대응 거시경제 충격파]한은, 시나리오별 분석

탄소세 부과땐 소비자물가도 연평균 0.02~0.09%P 상승

산업 구조·특성 감안해 부문별 현실적 이행 방안 수립 필요

무리한 'NDC' 목표에 관계부처도 국외 감축분 확대 고려





정부가 오는 2050년 탄소 순배출량을 ‘0’으로 만드는 넷제로를 이행하는 과정에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매년 최대 0.32%포인트씩 떨어질 것이라는 한국은행의 분석이 나왔다. 최근 우리나라 잠재성장률이 2% 수준으로 주저앉은 상황에서 기후변화 대응 충격이 거시경제에 장기간에 걸쳐 영향을 미치는 셈이다.



한은은 탄소 중립 이행이 경제에 미치는 영향이 큰 만큼 산업별 특성을 고려한 점진적 이행 방안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정부는 산업계의 반대에도 ‘국가온실가스 감축 목표(NDC)’를 지난 2018년 대비 35% 이상으로 상향하는 법안을 추진하고, 최근 40%까지 올리는 방안을 고려하는 등 속도 내기에 여념이 없어 경제 충격을 더 키울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16일 한은은 ‘기후변화 대응이 거시경제에 미치는 영향’ 보고서를 통해 탄소세를 부과할 경우 국내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시나리오에 따라 2050년까지 연평균 0.08~0.32%포인트 하락한다고 밝혔다. 소비자물가상승률도 2050년까지 연평균 0.02~0.09%포인트 상승하는 것으로 추정했다. 탄소세는 온실가스 배출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제도로 영국·프랑스 등 25개국이 도입했고 국내에서도 도입 논의가 진행 중이다.



한은은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산업화 이전 대비 1.5~2도 이내로 억제하는 경우와 온실가스 배출량을 100% 감축해 1.5도 이내로 막는 두 가지 시나리오로 나눠 분석했다. 정부 목표대로 완전한 탄소 중립을 이뤄내 지구 평균온도 상승 폭을 1.5도 이하로 낮추려면 우리나라 GDP는 매년 0.32%포인트 만큼 충격을 받고 물가도 0.09%포인트씩 오르는 상황을 감수해야 한다. 상승 폭이 2도만 돼도 GDP 충격은 0.08%포인트, 물가 상승은 0.02%포인트로 크게 완화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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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는 중위도에 위치한 지리적 특성 덕분에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 등 물리적 위험은 크지 않지만 고탄소 산업 비중이 높아 기후변화 이행 과정에서 발생하는 경제 충격이 더 크다는 분석이다. 탄소 중립에 막대한 정책 비용이 투입될 뿐 아니라 탄소세 부과 등 기후변화 대응 정책이 기업의 생산 비용을 늘리면서 물가 상승 압력으로 작용할 수 있다. 특히 탄소중립위원회 초안대로 2050년까지 태양광과 풍력 비중을 50~80%까지 높이려면 연간 41조~96조 원의 추가 부담이 필요한데 이는 대부분 전기요금 등에 전가될 가능성이 큰 상황이다.

한은은 탄소 중립 이행 리스크가 예상되는 만큼 매년 점진적으로 늘어나는 탄소세 수입의 일정 부분을 떼어 탄소 저감 설비나 저탄소 기술 개발 등에 투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와 함께 산업구조와 특성을 고려해 부문별로 객관적이고 현실적인 감축 목표를 수립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무리하게 탄소 중립을 추진할 경우 기업의 자산가치 하락과 부도율 상승 등으로 금융위기가 나타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은 분석에 따르면 탄소세 수입의 50%를 투자 재원으로 활용하는 적극적인 정부 투자 시나리오의 경우 GDP에 미치는 효과가 장기적으로 ‘플러스(+)’가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매년 GDP의 1% 수준을 투자하는 소극적 대응의 경우 성장률에 미칠 부정적인 영향에 별다른 개선 효과를 주지 못했다.

박경훈 한은 동향분석팀 차장은 “탄소 중립 이행을 완료하는 2050년까지 거시경제에 부정적 영향은 작지 않을 것”이라며 “민간 부문의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고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산업별 탄소 배출 구조와 배출량 증가 요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점진적인 이행 방안을 구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한편 정부는 국내 발전·산업 부문의 온실가스 감축만으로는 NDC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보고 국외 탄소 감축 확대 방안을 추진한다. 특정 국가가 친환경 기술을 타국에 이전하거나 여타 국가에 나무 심기 사업 등을 벌일 경우 국제사회는 관련 사업으로 발생한 온실가스 감축분을 해당 국가의 온실가스 감축 실적으로 인정해 준다. 철강과 석유화학 등 국내 주축 산업 관계자들이 NDC 달성의 실현 가능성에 물음표를 제기하는 상황에서 NDC 달성을 위한 정부의 고심이 엿보인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이날 산업통상자원부 등 관계 부처 따르면 정부는 NDC 달성을 위해 국외 감축분을 늘려야 한다는 입장을 최근 탄중위 측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 일본은 개도국 대상의 친환경 기술 이전 등을 통해 해외 온실가스 감축분을 늘려 NDC를 달성한다는 방침이다. 스위스 또한 지난해 전체 탄소 배출량의 75%는 국내에서, 25%는 해외에서 각각 감축하는 내용을 골자로 한 탄소법 개정안을 제정하기도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최근 NDC를 기존 대비 5%포인트 높은 40%로 설정해야 한다고 제안한 상황에서 국외 감축분 상향과 같은 조치 없이는 NDC 달성이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산업계에서 지배적이다. 정부는 NDC를 40%로 상향할 경우 해외 감축분은 전체 온실가스 감축분의 5분의 1 수준으로 설정해 NDC 달성을 꾀할 방침이다.

탄중위는 정부안 등을 바탕으로 다음 달께 NDC를 결정한다는 방침이며, 문 대통령은 11월 영국에서 열리는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6)에서 우리나라의 ‘2030년 NDC’ 최종안을 발표할 예정이다.


조지원 기자·세종=양철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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