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 스포츠 문화

식민지배, 독재, 민주화…닮은듯 다른 대만을 만나다[책꽂이]

■도해 타이완사

궈팅위外3인 지음, 글항아리 펴냄






누군가에겐 ‘펑리수’라 불리는 파인애플 케이크나 버블티로 유명한 관광지요, 누군가에겐 반도체로 한국과 경쟁하는 나라일 것이다. 해커 출신의 트랜스젠더 30대 여성을 디지털 특임 장관으로 임명했으며 아시아 최초의 동성혼 합법화를 실현한 개방적인 국가, 중국의 활기와 일본의 깔끔함을 겸비한 이곳은 바로 ‘대만’이다. 경상도보다 조금 큰 약 3만 6,000㎢의 영토에 인구 2,386만여 명이 모여 사는 작은 섬나라지만, 미중 갈등이 격화하는 국제 정치 판에선 빼놓을 수 없는 ‘핵 중의 핵’으로 부상한 곳이기도 하다. 작은 크기에 반해 정치, 경제, 사회, 문화에 걸쳐 다양한 얼굴을 지닌 대만, 당신이 아는 대만은 어떤 나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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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간 ‘도해 타이완사’는 선사시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대만의 수천 년 역사를 녹여냈다. 서문의 제목 ‘더 나은 독립 국가를 향하여’에서 알 수 있듯 ‘하나의 중국 원칙’ 하에 국가가 아닌 성(省)으로 정체성을 강요받아 온 지난날을 독립적인 하나의 국가 차원에서 다시 짚어보자는 취지로 써내려간 책이다. 이야기는 1,500만~1,600만 년 전 필리핀판 유라시아판이 서로 밀어내며 지각이 상승하고, 타이완 섬이 탄생하는 때부터 시작한다. 선사 시대와 17세기 해상 각축의 시대, 19세기 청나라 통치 후기(개항 시기) 등을 거쳐 1895년 청일전쟁으로 촉발된 일본 식민 시대부터는 우리에게도 익숙한 아시아 역사가 소개된다. 전쟁 패배 후 청나라는 시모노세키 조약에 따라 타이완과 펑후 제도를 일본에 이양했는데, 당시 타이완 사람들은 ‘조선을 쟁탈하고자 벌인 전쟁에 어째서 애꿎은 타이완이 희생되어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일본 입장에선 타이완이 동남아 지역과 일본의 중간 지점에 자리해 최적의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설탕·장뇌·찻잎은 자체 생산해 수출하는 이 나라가 경제적 수익성 꾀할 수 있는 곳이었다. 일본이 청나라에 타이완 할양을 요구한 건 여러 목적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일본은 조선과 마찬가지로 타이완에서도 황민화 정책을 추진했다. 다만, 조선의 창씨 개명은 강압적이었던 데 반해 타이완에서는 집안의 가장이 신청하고 ‘일본어 사용 가정’이라는 조건에 부합해야 개명할 수 있었다. 그렇게 일본식 성명을 갖게 된 이들은 관공서 임용이나 자녀 진학 등에 특혜를 얻었다. 물론 이는 민간이 아닌, 일부 엘리트와 공직자를 중심으로 이뤄졌다. 일본은 강압적인 방법 보다는 지역 사회 유력 인사나 지식인을 끌어들여 황민화 정책 협조를 꾀했는데, 당시 타이완 지식인들은 식민 통치 협력이라는 주도권을 가지고 타이완인의 권리와 이익 쟁취를 위한 협상을 펼쳤다.

책은 이 밖에도 1949년 국공내전과 국민당의 타이완 퇴각, 1949년 5월 20일부터 1987년 7월 15일까지 세계적으로 가장 길었던 계엄 체제 등을 소개한다. 특히 냉전 시기 미국이 중국 공산주의 세력에 대한 대항을 위해 아시아 지역 원조를 확대한 과정과 이것이 타이완의 정치, 경제, 문화에 끼친 영향 등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고, 중국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현 차이잉원 정권에 대한 평가와 과제도 제시한다.

저자 중 한 명인 왕핀한은 이렇게 말한다. ‘타이완 역사를 싫어했던 적이 있다. 피눈물로 얼룩진 것도, 비참한 과거도, 억울하고 울분에 차 분개하는 것도 싫었다. 슬프고 화가 나서가 아니라 무기력함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본 척도 들은 척도 하지 않았던 시절이 있었다.’라고. 조국의 희비와 질곡을 마주한 그는 다시 말한다. ‘사회는 사람과 같아서 아픈 과거가 있었기에 지금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이 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고. 일본 식민지를 겪었고, 독재 정부를 경험했으며 이를 바탕으로 저항적 민주주의를 만들어 왔다는 점에서 한국과 대만은 닮은 점이 많다. 닮은 듯 다른 두 나라를 비교하며 ‘독립 국가’, ‘역사’라는 묵직한 질문에 다가설 수 있다는 점에서 한국 독자들에게도 의미 있는 책이다. 2만 2,000원.


송주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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