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력이 다음 달부터 적용할 전력 요금을 인상했다. 가구당 약 1,000원꼴로 큰 폭이 아니지만 온 국민이 쓰는 전기료를 올린 것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적자가 누적되고 생산원가가 올라 선거철이라도 공공요금 인상을 도저히 미룰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이다. 도시가스도 마찬가지 상황이다. 원료인 액화천연가스(LNG) 가격이 1년 새 열 배나 뛰어 요금 인상이 불가피하다. 코레일은 수조 원 의 적자가 쌓여 철도 요금도 올려야 할 처지다. 고속도로 통행료, 버스·지하철 요금, 상하수도료 등 다른 공공요금도 들썩인다. 민간 상품도 농축수산물 수급 불안정과 원자재값 상승으로 가격이 오르고 있다. 우유값이 5% 인상돼 빵·과자 같은 제품에의 연쇄 파급 효과가 우려된다. 식자재 가격 인상으로 냉면·햄버거 등 외식 비용도 가파르게 상승했다.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다섯 달째 물가 안정 목표인 2%를 훌쩍 뛰어넘었다. 생산자물가지수는 두 달 연속 7%를 초과했다. 생산자 가격이 소비자 가격으로 이어지는 점을 고려하면 앞으로도 물가가 더 올라 올해 9년 만에 가장 높은 물가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더 중요한 문제는 물가 통계 수치가 실제 상황의 심각성을 채 반영하지 못한 점이다. KB국민은행 부동산 동향은 올해 8월 전셋값이 1년 전보다 11% 올랐다고 했다. 그러나 물가 통계를 맡은 통계청은 별도의 표본조사를 해 전셋값 상승률이 불과 2.2%라고 산정했다. 지난해 임대차보호 3법을 만든 이래 온 나라가 전세 대란을 겪었는데 전셋값이 전체 소비자물가인 2.6%보다도 덜 올랐다고 본 것이다.
자가 소유 주택은 우리나라 공식 물가지수에 잡히지 않는다. 반면 미국에서는 소비자물가지수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자기가 소유한 집이라도 “이 집을 세주면 얼마 받겠느냐”고 질문해 가격 변화를 통계에 반영한다. 최근 미국 소비자물가 상승률이 5%를 넘는데 여기에는 주택 가격 상승효과도 포함됐다. 한국 통계청도 얼마 전부터 자가 소유 주택을 보조 지표로 사용하고 있으나 측정 방법상 앞서 설명한 표본의 집세 변동률을 원용해 주택 가격을 포함하면 소비자물가가 더 내려가는 신기한(?) 결과를 보인다. 인간 생활의 세 가지 기본 요소 가운데 하나인 집의 가격 변동을 정확히 반영하는 소비자물가지수를 만들어야 한다. 최근 주택 가격과 전셋값 상승의 실제 효과를 고려하면 물가는 미국의 5%대보다 더 올랐을 것으로 보인다.
물가 상승은 지출 비용을 늘려 국민 부담으로 작용한다. 올해 2분기 가계 동향 조사에 따르면 월평균 가계소득은 지난해보다 0.7% 감소했는데 가계지출은 4.0% 늘어 수지가 나빠졌다. 1분기보다 사정이 악화했는데 물가 상승률이 더 가팔라진 영향이 크다.
최근 한 여당 대선 후보 캠프의 경제학 교수가 한국은행 발권력을 동원해 경기를 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은이 돈을 찍어 물가가 100배 상승하면 100억 원을 가진 부자는 손해지만 가난한 사람은 피해가 없다고도 했다. 부자나 기업은 돈뿐 아니라 자산이 많아 인플레이션이 좋지만 여유가 없는 사람이나 임금이 정해진 노동자는 손해라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이다.
코로나19로부터 일상을 회복하려면 물가 안정에 방점을 두는 정책을 펼쳐야 한다. 경제가 정상화하는 과정에서 억눌렸던 소비가 폭발해 인플레이션 압력이 더 커진다는 분석이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면 오는 10월부터 시행한다는 신용카드 캐시백 제도는 정말 어이가 없다. 보상 소비 심리라는 게 있는데 돈까지 줘가며 수요를 부추기는 식이다. 정부는 경제성장률(GDP)에 신경을 쓰지만 국민은 물가를 걱정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