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제강점기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문제가 재차 불거지면서 한일 관계가 급속히 냉각된 가운데 온건파 정치인으로 알려진 기시다 후미오 전 자민당 정무조사회장이 새 일본 총리로 뽑혔다. 외교가에서는 기시다 신임 총리가 대화를 중시하는 인물인 만큼 한일 간 ‘물밑 교류’가 활성화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기시다 총리의 일본 외무상 시절 여러 차례 대화를 이끌었던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서울경제와의 통화에서 “기시다 총리는 굉장히 합리적인 인물로 신뢰를 갖고 대화할 수 있는 사람”이라며 “한일 관계에도 좋은 전환점이 됐으면 하는 기대를 갖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기시다 총리는 과거 전임자들에 비해 한일 관계를 매우 중시하며, 대화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스타일”이라며 “한일 양측이 노력하면 분위기가 개선될 여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윤 전 장관과 기시다 전 외무상은 지난 2013년부터 약 4년 3개월 간 재임 기관이 겹쳤고, 매년 6~7차례 만난 바 있다. 당시에도 아베 정권이 한일 과거사 문제에서 강경론을 고수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두 장관은 서울에서 한중일 정상회담이 개최되는 등 만날 기회가 생길 때마다 오찬과 만찬을 통해 신뢰 관계를 형성한 것으로 알려졌다.
주일대사를 지낸 신각수 전 외교통상부 차관도 본지와의 통화에서 “현재 일본에서는 누가 총리가 되든 한일 과거사 문제의 공은 한국에 넘겼다는 일종의 컨센서스가 형성됐다”며 “기대해볼 부분은 한일 간 물밑 작업과 교류가 활발해질 수 있다는 점”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스가 전 총리는 아베 정권의 남은 임기를 위임 받은 측면이 강해서 한일 간 물밑 작업 자체가 없었다”며 “기시다 총리는 스가 전 총리보다 훨씬 적극적으로 물밑 작업에 임할 수 있는 상황이며, 한국이 조금씩 대화의 초점을 맞춰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스가 총리 시절에는 한일 정상은 물론 외교장관 간 교류가 전무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총리는 지난 6월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를 계기로 영국에 모였지만, 약식 회담은 불발됐다. 이에 앞서 정의용 외교부 장관과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도 지난 5월 영국에서 미국 주도로 한일 외교장관 간 첫 양자회담이 이뤄졌지만, 20분이라는 짧은 시간 동안 양국의 현안에 대한 이견만 확인하고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