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노벨 화학상은 제약 산업에서 혁신을 촉진한 ‘비대칭 유기촉매 반응’을 일으키는 독창적인 분자 제작 도구를 만든 과학자들에게 돌아갔다. 기존 금속이나 효소를 사용하지 않고도 비대칭 합성 화학물을 만드는 새로운 비대칭 유기촉매를 개발한 것이다. 이로써 신약 물질부터 태양 빛을 받아 전기를 만드는 태양전지에 사용되는 분자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물질을 효율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 촉매는 자신은 직접 화학반응에 참여하지 않지만 반응을 제어하고 가속하는 작용만 하는 물질을 가리킨다. 우리 몸에도 효소 형태로 수천 개의 촉매가 있다.
스웨덴 왕립과학원 노벨위원회는 6일(현지 시간) ‘비대칭 유기촉매 반응’이라고 하는 분자를 만드는 정밀한 도구를 개발한 공로로 독일의 베냐민 리스트(53) 막스플랑크연구소 촉매접촉분야연구소장과 미국의 데이비드 맥밀런(53) 프린스턴대 화학과 교수를 노벨 화학상에 공동 선정했다. 두 과학자는 상금 1,000만 크로나(약 13억 5,000만 원)를 나누게 된다. 리스트 교수는 제자인 배한용 성균관대 화학과 교수와 함께 지난 2월 베티버 오일의 향기 원리를 유기합성을 통해 밝혀낸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맥밀런 교수는 2016년과 2017년 서울대에서 화학부 석좌교수를 겸직했다. 두 사람 모두 한국과 나름 인연이 있는 것이다.
노벨위원회는 “오늘날 내구성 있는 화학물질을 만들거나 배터리에 전기에너지를 저장하거나 질병의 진행을 억제할 수 있는 분자를 만드는 모든 과정에 화학과 촉매가 관여한다”며 “이들이 제약 연구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고 화학 분야를 더욱 친환경적으로 만들었다”고 높이 평가했다. 이들 덕에 당뇨병 치료제인 ‘시타글립틴’과 우울증 치료제인 ‘듀록세틴’,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비롯해 향수 원료 물질 등 광범위하게 쓰이는 화학물질을 금속 없이도 만들어낼 수 있게 됐다.
2000년 비대칭 유기촉매를 개발한 두 사람은 수상 소식에 “너무 놀랐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리스트 교수 연구실에서 박사후연구원을 한 김혜진 한국화학연구원 선임연구원은 “유기촉매의 대칭성을 이용해 의약품에 필요한 화학물질을 선택적으로 만들 수 있게 됐다”며 “대부분 독성이 있는 중금속 중심으로 이뤄지는 금속 촉매를 대체하는 길을 텄다”고 설명했다.
과학자들은 과거 오랫동안 촉매로 금속·효소 등 두 가지를 염두에 뒀지만 리스트와 맥밀런이 2000년 제3의 촉매반응인 유기분자를 기반으로 한 비대칭 유기촉매 반응을 개발하면서 새 길이 열렸다. 노벨위원회는 “유기촉매는 값싸게 생산할 수 있고 친환경적”이라며 “이들이 고안해 낸 비대칭 유기촉매 반응은 제약 분야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밝혔다. 요한 외크비스트 노벨위원회 화학분과 위원장은 비대칭 유기촉매에 대해 “이 개념은 독창적이고 간단하다. 많은 사람이 ‘왜 우리가 일찍 생각해내지 못했을까’라고 궁금하게 여겼다”고 전했다.
노벨상은 4일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화학상까지 발표됐고 7일 문학상, 8일 평화상, 11일 경제학상 수상자가 차례로 공개된다. 올해 노벨상 시상식은 코로나19 탓에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12월 10일에 소규모 대면 방식과 온라인으로 진행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