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고인돌2.0] “신화를 알면 미술이 더 재밌어져요”

강서도서관이 마련한

이화진 박사의 ‘그리스·로마 신화, 미술이 이야기 하다’

서울 명덕여자중학교 학생들에게

미술작품에 담긴 신화 속 사건의 의미 설명

이화진 박사가 지난 6일 서울 명덕여자중학교에서 열린 강의에서 학생들과 함께 미술작품을 보며 그 속에 담긴 신화를 설명하고 있다./사진=백상경제연구원이화진 박사가 지난 6일 서울 명덕여자중학교에서 열린 강의에서 학생들과 함께 미술작품을 보며 그 속에 담긴 신화를 설명하고 있다./사진=백상경제연구원




가을비가 추적추적 내리던 지난 6일. 서울 명덕여자중학교 도서관에는 1학년 학생 30여 명이 모였다. 신화와 미술을 연결해서 소개하는 특별 강의를 듣기 위해서였다. 이날 강의는 강서도서관이 지역 청소년의 인문학 소양을 높이기 위해 마련했다. 미술사학을 전공하고 한국항공대학교에서 인문자연학부 강사로 활동하는 이화진 박사가 강의를 맡았다.



이 박사는 “‘해리 포터’를 좋아해요”라는 질문으로 학생들의 관심을 끌었다. 학생들은 일제히 “좋아해요”라고 대답했다. 그는 학생들에게 영화 ‘해리 포터와 마법사의 돌(2001)’의 일부분을 보여줬다. 해리 포터가 선물 받은 투명망토를 친구들과 둘러쓰고 출입이 금지된 지하실에 몰래 들어가려는 장면이다. 하나의 몸통에 세 개의 머리가 달린 기괴하게 생긴 개가 지하실 출입문을 지키고 있다. 이 박사는 “해리 포터의 이 장면은 신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로마의 보르게세 미술관에 전시돼 있는 한 조각상을 스크린에 보여줬다. 한 여성을 안고 있는 남성과 그를 밀어내는 여성을 표현한 작품이다. 그들의 발밑에는 두 개로 뾰족하게 갈라진 이지창과 머리 셋 달린 개가 조각돼 있다. 해리 포터 영화 장면에서 본 기괴한 개가 조각상에도 등장하자 학생들은 호기심 가득한 눈빛으로 작품을 더 유심히 살폈다. 베르니니가 조각한 ‘페르세포네의 약탈’이라고 작품명을 밝힌 이 박사는 “이 조각상 역시 해리 포터와 같은 신화에서 모티브를 가져왔다”며 관련 신화에 대한 소개를 이어갔다.

조각상의 이지창은 지하세계를 다스리는 신 ‘하데스’를 상징한다. 머리 셋 달린 개는 지하세계의 문지기 ‘케르베로스’다. 어느 날 하데스는 들판을 걷다 한 여성을 보고 첫눈에 반한다. 그녀는 천상의 신 ‘제우스’와 대지의 여신 ‘데메테르’의 딸 ‘페르세포네’다. 하데스는 그녀를 납치해 지하세계로 끌고 간다. 딸이 보이지 않자 어머니 데메테르는 대지를 돌보는 것을 미뤄두고 애타게 딸을 찾아다닌다. 대지의 신이 대지를 돌보지 않자 곡식이 말라죽고 사람들은 굶주린다. 이를 알게 된 제우스는 하데스를 찾아가 딸을 돌려보내라고 명한다. 하데스는 어쩔 수 없이 페르세포네를 지상으로 돌려보내며 가는 길에 먹으라고 석류를 준다. 지하세계의 음식을 먹으면 반드시 지하로 되돌아와야 하는 법칙이 있기 때문이다. 이 사실을 몰랐던 페르세포네는 석류를 먹고 만다. 딸을 다시 지하세계로 보낼 수 없다는 어머니 데메테르와 법칙이니 지켜야 한다는 하데스가 서로 다투자 제우스는 절충안을 내놓는다. 절충안에 따라 페르세포네는 일 년 중 3분의 2는 지상에서 어머니와 살고 나머지 3분의 1은 지하에서 하데스와 살게 된다.



이 박사는 “페르세포네가 일년 중 어머니와 함께 지상에 머무는 시기는 대지에 곡식이 자라고 풍요로움이 가득하지만 페르세포네가 지하로 내려가는 시기에는 슬픔에 잠긴 그녀의 어머니가 대지를 돌보지 않아 곡식이 죽고 대지는 척박해진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베르니니의 조각상도 단순히 하데스가 페르세포네를 납치하는 장면을 보여주려는 건 아니다”며 “계절의 변화에 따른 자연의 섭리와 생명과 죽음의 순환 관계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라며 작품에 담긴 속뜻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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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박사는 이날 학생들에게 여러 미술 작품들을 보여주며 각 작품이 어떤 신화와 연결됐는지를 찾고 관련 이야기를 들려주는 과정을 반복했다. 그는 “그림에 월계관이 나오면 ‘아폴론’ 신화를 담고 있는 것”이라며 ‘에로스’로부터 사랑의 황금 화살을 맞은 아폴론은 ‘다프네’에게 사랑에 빠졌지만 아폴론이 싫은 다프네는 그에게 벗어나기 위해 월계 나무로 변했다는 이야기를 들려줬다.

이 박사는 “미술작품을 볼 때 월계수, 이지창이나 삼지창, 머리 셋 달린 개 등 각 신들을 상징하는 것을 찾고 작품 속 인물들의 행동과 배경을 관찰하면 해당 미술작품이 신화의 어떤 사건과 연결됐는지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신화를 알수록 미술작품을 분석하는 능력이 생기고 미술의 재미를 느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강서도서관이 마련한 ‘그리스·로마 신화, 미술이 이야기 하다’ 강좌는 ‘고인돌2.0(고전·인문아카데미2.0: 고전 인문학이 돌아오다)’의 프로그램의 하나로 개최됐다. ‘고인돌2.0’은 서울경제신문 부설 백상경제연구원과 서울시교육청 도서관 및 평생학습관이 2013년부터 함께한 인문학 교육 사업이다. 성인 중심의 인문학 강좌로 시작한 ‘고인돌’은 지난해부터 명칭을 ‘고인돌2.0’으로 바꾸고 서울 전역의 중·고등학교와 연계해 강연을 하고 있다. 역사와 건축, 경제, 과학, 미디어 등 다양한 분야의 총 56개 강좌로 구성된 올해 제9기 ‘고인돌2.0’은 특히 교과목과의 연계성을 높여 청소년들의 적극적인 참여를 이끌어 내고 있다.

명덕여중 1학년 김지아 양은 “미술에 관심이 많았는데 미술작품에 숨은 이야기들을 듣고 해석하는 방법을 알게 돼 재밌었다”고 말했다.

해당 강의를 준비한 강서도서관의 이진수 사서는 “학생들이 중·고등학교의 수업 과정에서는 접하기 어려운 전문적인 내용의 강의를 맛볼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다.

청소년들의 인문학적 사고를 높이기 위한 고인돌 2.0 강의는 3월부터 11월까지 80여개 중·고등학교에서 열린다. / 이효정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원 hjlee@sedaily.com


이효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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