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동향

[뒷북경제]탄소 40% 감축한다면서 ...“비용은 묻지마세요"

탄소중립위,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 26.3%→40% 상향

정부, 소요 비용 추산해놓고도...“추산이 어렵다”





정부가 2030년 온실가스 감축목표(NDC)를 현행 2018년 대비 26.3% 감축에서 40% 감축으로 대폭 상향 조정했습니다. 앞서 국회가 정한 35% 감축률도 도전적인 목표라는 지적이 많았는데 이보다 감축치를 더 끌어올린 겁니다. 부처 내에서도 상향 폭이 지나치게 높다는 목소리가 적잖았지만, “기후 위기를 넘어서야 한다” “국제 사회에 대한 최소한의 신의를 지켜야 한다”는 청와대의 입김이 우선 작용한 결과로 보입니다.



한데 변화를 재촉하면서도 정부는 이를 이행하는 데 따를 비용은 전혀 공개하지 않고 있습니다. 값싼 화석 연료에 벗어날수록 전기요금을 시작으로 우리 사회가 감당할 비용은 불어날 수밖에 없는 데도 말이죠. 누가, 얼마 만큼의 비용을 감당해야 할지도 모른 채 일단 정부만 믿고 따라가는 형국이 됐습니다.

정부는 8일 NDC 상향안을 내놓으면서 이행에 따를 비용을 추산하기 어렵다고 밝혔습니다. 탈탄소 설비를 들이는 데 적잖은 비용이 든다는 점을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기술 혁신이 빨리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비용 하락 요인도 있어 정확한 견적을 내기 쉽지 않다는 입장입니다.



다만 정부가 외부로 공개하지 않았을 뿐 추산을 아예 안한 것은 아닙니다. 복수의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NDC 상향안을 놓고 부처 간 논의를 진행하던 지난 7월께 정부는 감축 목표치를 31.4%로 설정하고 발전과 산업·수송 등 주요 분야에 투입될 비용을 각각 나눠 산정했습니다. 조사 결과 감축에 필요한 총 비용은 274조원으로 집계됐는데 이는 우리나라 한 해 예산의 거의 절반에 이르는 막대한 금액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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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문별로 보면 배출 비중(전체의 37%)이 가장 큰 발전 부문에서 탄소를 줄이는 데 195조 2,000억 원이 소요될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석탄발전소를 대체해 액화천연가스(LNG)발전소와 신재생에너지 단지를 대폭 늘리는 동시에 이를 전력망에 연결할 송배전 설비를 구축하는 데 필요한 비용을 감안한 것입니다. 산업 부문에서는 탄소 감축 설비를 도입하고 화석연료를 대체할 친환경 원료를 확보하는 데 54조 1,000억 원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습니다. 이외에 수송 분야의 탄소 감축과 탄소 포집 저장 기술 확보에 각각 16조 1,000억 원, 8조 6,000억 원이 들 것으로 추산됐습니다.

비용을 추계 해놓고도 이를 공개하지 않는 정부의 속내를 알긴 어렵습니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추계를 하긴 했지만 워낙 변수가 많다보니 실제 이행 비용과 차이가 날 수 있다”며 “정부 입장에선 불확실한 추계안을 공개하는 게 다소 부담”이라고 했습니다.



이행 비용을 가늠하기 어렵다면 감축률이라도 단계적으로 조정해야 했지 않을까요. 부처 내에서도 점진적 변화를 주문하는 목소리가 없진 않았습니다. 당초 7월까지만 하더라도 정부는 37.5%의 감축률을 설정하되 일정 비중(±5%p)의 오차 범위를 설정하는 안을 검토했습니다. 32.5~42.5%까지 감축 시나리오를 폭넓게 펼쳐 이행 과정의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였죠.

한데 8월 국회가 탄소중립법을 통해 ‘35% 이상 감축’으로 목표를 정하면서 계획을 틀어야 했습니다. 마지노선이 35%로 잡히자 정부는 다시 35~40% 사이로 감축률을 수정한 것입니다. 부처간 논의가 막바지에 이른 9월 초. 이번에는 문재인 대통령이 나서 “온실가스 감축 목표가 40% 이상 돼야 한다”며 재차 상향 조정을 주문했습니다. 국회와 청와대 입김에 “이행 상황을 보며 감축률을 점진적으로 상향 조정해야 한다” “단일 목표치를 설정하기 보단 범위 목표치를 둬 혹시 모를 부작용에 대비해야 한다”는 실무 부처의 의견은 철저히 배제됐습니다.

이번 NDC 상향 논의에 관여한 한 인사는 “합리적인 정책 결정을 위해선 득실을 따지는 게 기본”이라면서 “이행 비용을 보다 면밀히 따져봐야 하는데도 ‘득’만 우선 부각해 감축률을 올려 잡은 모양새라 아쉬움이 많다”고 했습니다. 유승훈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는 “NDC가 정해지면 발전과 산업·수송 등 사회 전 분야에 전에 없던 변화가 불가피하다”며 “목표치를 못 박기에 앞서 일자리가 얼마나 줄어들지, 전기 요금은 얼마나 오르는지를 투명하게 공개하고 국민의 동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우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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