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 작곡가인 안토니오 비발디는 사계를 작곡하던 당시 악장마다 작곡 의도를 설명하는 소네트(짧은 시)를 남겼다. 예를 들어 봄 1악장엔 ‘따뜻한 봄이 왔다. 새들은 즐겁게 아침을 노래하고 시냇물은 부드럽게 속삭이며 흐른다’고 적었다. 가을 1악장에는 ‘농부들이 풍성한 수학의 기쁨을 나누며 술과 춤 잔치를 벌인다’고 기록했다. 비발디의 소네트 덕분에 연주자들은 작곡가의 의도를 한층 쉽게 이해한 후 사계를 연주한다.
그런데 2050년 봄 여름 가을 겨울이 비발디가 살았던 18세기와 과연 같을까. 한국의 경우 2050년 평균 온도는 현재보다 2.4도 오르고, 한반도 주변 해수면 온도가 상승하면서 약한 열대지역과 비슷한 조건이 될 것이라고 기후과학자들은 예측한다. 환경 변화 탓에 생태계 역시 현재와 다른 구성을 보일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다면 음악은 자연의 변화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음악이 기후 변화에 대한 경고 메시지가 될 순 없을까. 이런 고민이 새로운 사계를 낳았다. 오는 20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 되는 ‘사계 2050-기후위기 대응을 위한 글로벌 AI 프로젝트’가 바로 그 결과물이다. 굉장히 파격적이라 할 수 있는 공연에서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이 솔리스트를, 서울시립교향악단 부악장 웨인 린이 프로젝트 오케스트라의 악장을 맡았다.
임지영은 지난 12일 서울 강남구 오드포트에서 열린 기자 간담회에서 “데모 파일을 처음 받았을 때 (해괴해서) 거의 3초 정도 듣고 꺼버렸다”며 “하지만 곡에 내포된 메시지를 최대한 제대로 전달하는 게 연주자의 역할이라고 판단했고, 의미 전달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임지영은 지난 2015년 세계 3대 콩쿠르 중 하나인 퀸 엘리자베스 콩쿠르 바이올린 부문에서 스무 살이라는 나이에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1위를 차지했던 뛰어난 연주자다.
임지영이 이번 공연 참여를 결정하기 전 고민했던 이유는 단지 사계 2050이 원곡과 다르기 때문 만은 아니다. 사계 2050은 기후변화 위험성을 널리 알리기 위해 글로벌 디지털 디자인 혁신기업 AKQA가 작곡가 휴 크로스웨이트, 시드니 심포니 오케스트라 및 모나쉬 기후변화 커뮤니케이션 연구 허브와 협업한 프로젝트다. 무엇보다 관심이 집중되는 부분은 원곡을 기반으로 한 편곡을 인공지능(AI)이 했다는 점이다. AI가 최신 기후 모델링 데이터를 기반으로 곡을 만들어냈다. AI는 원곡에서 새소리를 연상시키는 부분에서 음표를 제거했고, 평화로운 분위기 부분에선 음을 쪼개거나 늘어뜨렸다. 임지영은 “(AI의 사계는) 연주자와 듣는 사람에게 생소하고 많은 의문이 들고, 전혀 다른 곡처럼 들리지만 비발디의 사계와 같은 구조를 가진 작품”이라며 “그래도 경각심과 불안정함을 고스란히 잘 표현했다”고 설명했다.
한편 AI가 작곡한 사계 2050은 버전이 여럿이다. 도시마다 기후 데이터가 다르기 때문이다. 독일 버전, 네덜란드 버전, 케냐 버전, 브라질 버전도 있다. 주최 측에 따르면 다음 달 스코틀랜드에서 열리는 제26차 UN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 개막일인 11월 1일에 세계 각지의 ‘사계 2050’ 연주가 24시간 동안 온라인으로 중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