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외 의료 장비를 국산화하려 하는데 회사에서 장비를 사주지 않더군요. 결국 해당 장비를 쓰는 병원을 찾아가 시술을 받았습니다. 통증이 어느 정도고 어떤 반응이 나타나는지 알기 위해서는 멀쩡한 정신으로 있어야 했습니다. 할 수 없이 마취 없이 시술을 받았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의료 기기를 개발할 수 있었습니다.”
‘괴짜.’ 올해 의료 장비 제조 분야에서 처음으로 대한민국 명장 타이틀을 따낸 김병철(50) 서린메디케어 대표를 만났을 때 받은 인상이다.
김 대표는 사회 초년병 때 일을 배우겠다며 팀장을 밤 12시까지 붙잡고 매달렸다. 30대 초반 한창 신혼일 때는 신제품 개발 프로젝트가 생길 때마다 아내를 친정으로 보내기도 했다. 그것도 한 달씩이나. 첫 직장이던 택시 이동 무선 단말기 업체에서 일하던 동료 직원들이 외환위기로 모두 그만뒀을 때도 혼자 남아 금형 제작부터 회계, 소프트웨어 개발까지 1인 5역을 해냈다.
김 대표는 18일 경기도 동탄 서린글로벌센터 사무실에서 서울경제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러한 경험이 기업을 단편이 아닌 전체로 볼 수 있게 했다”고 술회했다.
김 대표가 의료 장비와 처음 인연을 맺게 된 것은 지난 2008년 한 의료 기기 중소기업에 연구소장으로 근무하면서부터다. 그는 “당시 주말과 휴일도 없이 나와 일하면서 20여 개 제품을 개발했다”며 “그 결과 30억~40억 원에 불과했던 기업 매출이 200억 원까지 뛰었다”고 말했다.
41세 때 1인 기업 투케이코리아를 세웠다. 창업의 길로 들어선 것은 엔지니어가 대우받는 회사를 만들고 싶었기 때문. “외국산 제품을 국산화할 때 원리에 어긋나는 제품을 많이 보면 개선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회사에서는 그대로 베끼기만 하라고 했습니다. 이래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창업의 과정은 험난했다. 개발부터 생산까지 모두 혼자 했다. 한여름에 에어컨도 없는 미분양 아파트에서 개발하다 땀띠로 고생한 적도 있었다. “이러다 죽을 수도 있겠다고 생각할 만큼 힘들었습니다.” 다행히 가능성을 본 서린바이오로부터 10억 원을 투자받았고 이후 이름도 현재의 사명으로 바꿨다.
의료 장비 제조는 진입 장벽이 높은 업종이다. 지멘스 등 글로벌 업체들이 장악한 시장을 뚫고 들어가려면 기존과는 다른 뭔가 특별한 것이 필요했다. 김 대표가 플라스마에 관심을 갖게 된 이유다. 플라스마는 고체·액체·기체와는 다른 이온화된 ‘제4의 물질’로 불린다. 특히 살균력과 재생 능력이 탁월해 피부 미용에 사용할 경우 통증 없이 피부 속까지 스며들게 할 수 있다.
효과가 분명한 이상 머뭇거릴 이유가 없었다. 고교 선배이자 평생 플라스마를 연구해온 이춘우 박사를 영입해 본격적인 제품 개발에 돌입했다. 현재 보유한 40여 개의 지식재산권 중 3분의 2가 플라스마 관련인 것은 그만큼 그의 열정이 뜨거웠다는 것을 의미한다. 창업 1년 후 첫 여드름 치료 기기 ‘에크노’를 내놓는 등 매년 꾸준히 신제품을 선보였다. 지난해 전체 매출액의 절반에 달하는 20억 원을 이 분야에서 올리고 수출 대상국을 50여 개국으로 늘린 것도 이러한 노력 때문이다.
김 대표는 “코로나19만 아니었다면 매출은 더 늘 수 있었을 것”이라며 “내년에는 새로운 플라스마 제품을 개발하고 마케팅에도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강조했다.
김 대표의 모토는 ‘쉽게, 더 쉽게’다. 사용자의 편의성을 높여야 최고의 효율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직원들에게 초등학교 5~6학년생이면 다 사용할 수 있게 만들라고 요구한다”며 “제품이 완성되면 여직원에게 드라이버 하나와 사용설명서만 주고 제품을 다시 만들어보게 하는 테스트를 거친다”고 덧붙였다.
후배 연구자들에 대해 조언도 아끼지 않았다. 그는 “내가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모든 경우의 수를 모두 따져봤다는 점”이라며 “결과를 볼 때까지, 끝을 볼 때까지 해보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역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