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과 화성 정복에 나서고 지구궤도의 우주정거장을 구축 중인 중국, 지구에서 3억 ㎞나 떨어진 소행성 시료를 채취해오는 일본….’
우주발사체의 자립을 위한 변곡점에 선 한국에 비해 까마득히 앞서가는 중국과 일본의 모습이다. 우리나라가 21일 오후 4시 고흥 나로우주센터에서 한국형 발사체(누리호)를 쏘아 올리는 역사적인 순간을 맞이하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것이다. 하지만 우주발사체 개발을 위해 나선 지 30여 년 만에 홀로서기의 계기를 마련한 것은 평가할 만하다. 지난 1991년 말 소련 해체 이후 러시아에 견학 수준을 조금 뛰어넘는 정도의 기술 연수에 나섰던 때에 비하면 격세지감이다. 우리는 그동안 미국 주도의 미사일 기술 통제 체제(MTCR)와 국방 관련 수출입 규제(ITAR)로 인해 우여곡절이 많았다.
전문가들은 역대 정권마다 우주개발 계획이 춤을 춘 것은 범부처와 연구계·산업계를 아우르는 우주 컨트롤타워가 없었던 이유가 크다며 차기 정권에서 우주 전담 기구의 필요성을 거론하고 있다.
△우주발사체 홀로서기 본격화=우리나라는 이번에 1.5톤 더미(모사체 위성)를 실은 누리호를 남쪽으로 발사해 지상 600~800㎞ 저궤도 상공에 띄운다. 내년 5월에는 1.3톤 더미에 200㎏ 위성을 싣고 2차 발사를 한다. 이후 누리호의 성능을 높이기 위해 오는 2027년까지 네 차례 더 발사한다. 우리나라는 위성은 세계 7대 강국으로 평가되지만 우주발사체는 우주강국들에 비해 상당히 뒤처져 있다. 앞서 러시아(1957년), 미국(1958년), 유럽(1965년), 중국·일본(1970년), 인도(1980년), 이스라엘(1988년), 이란(2009년), 북한(2012년)은 우주발사체 자립에 성공했다. 이 중 이스라엘·이란·북한은 상대적으로 위성 발사 능력이 소형에 그친다. 이상률 한국항공우주연구원장은 “누리호가 성공하면 세계 일곱 번째로 중대형 액체 로켓엔진을 개발한 국가가 된다”며 “설계, 제작, 시험, 발사 운용 등 모든 과정을 우리 기술로 진행했다”고 뿌듯해했다. 누리호 개발 사업은 2010년 3월부터 2022년 10월까지 1조 9,572억 원이 투입된다.
△고난이도 과학기술=높이 47.2m, 중량 200톤(연료 56.5톤·산화제 126톤)인 누리호는 75톤 추력을 내는 로켓엔진 4개를 클러스터링해 핵심인 1단부(대기권 돌파)로 사용하고 2단부(우주공간 이동)와 3단부(저궤도 위성 진입용)는 75톤 추력 엔진과 7톤 추력 엔진을 1개씩 쓴다. 부품이 37만 개에 달한다. 누리호 개발에는 한국항공우주산업(KAI)이 전체 조립, 한화에어로스페이스가 엔진 설계, 현대중공업이 발사대 구축에 나섰으나 제조·설계·조립·용접 등에 300여 개의 중소기업이 참여했다. 똑같이 추진력을 내야 하는 1단부 엔진들을 연료와 산화제를 담는 추진제 탱크(높이 10m·직경 3.5m)에 연결해야 한다. 연료 점화를 위한 액체산소의 온도가 영하 183도이고 엔진 화염이 무려 3,300도에 달한다. 이때 초당 1,000㎏의 추진제를 안정적으로 연소시키는 게 관건이다. 세계적으로 첫 발사에서의 성공 사례가 30% 정도밖에 되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허환일 충남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2013년 발사한 나로호는 핵심인 1단은 러시아제였고 100kg급 위성을 300㎞ 상공에 쏘아 올리는 수준이었다”며 “누리호는 우주강국으로 도약하는 힘찬 시발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위성 발사 대행 서비스는=정부와 항우연은 누리호를 내년 2차 발사 후 2027년까지 4회에 걸쳐 추가 발사하며 상용화를 모색하기로 했다. 정부는 누리호 이외 소형 발사체를 개발해 오는 2025~2030년에 500㎏ 이하의 소형 위성을 저궤도에 발사한다는 복안도 있다. 나아가 2030~2040년에는 우리 발사체로 저궤도에 대형 위성을 보내고 3만 6,000㎞ 상공의 정지궤도 위성까지 띄운다는 목표다. 현재 국방부와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2024년 75톤급 고체연료 엔진을 쓴 2단 우주발사체로 소형 위성이나 다수의 초소형 위성을 저궤도에 쏘아 올릴 계획이다. 이창진 건국대 항공우주공학과 교수는 “올해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사일 개발 족쇄가 해제되고 아르테미스 협정(미국 주도 달 탐사 프로젝트)에 가입했다”며 “우리나라는 앞으로 10년간 100개가량의 다양한 위성을 쏘아 올릴 계획인데 예산이 소요되더라도 자체 발사 능력을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의 우주굴기=미국과 패권을 다투고 있는 중국은 2050년 연 10조 달러의 우주 경제권을 만든다는 ‘우주굴기 2050’ 계획을 2019년 세우기도 했다. 이달 16일에는 독자 우주정거장(톈궁) 건설을 위한 두 번째 유인 우주선을 발사하는 데 성공했다. 3명의 우주비행사들은 6개월간 우주에 머물며 기술 시험과 장비 설치에 나선다. 중국은 2018년 39회, 2019년 34회, 2020년 39회, 올해 38회의 우주발사체를 쏘아 올리며 4년째 최다 발사국으로 부상했다. 중국은 2019년 초 세계 최초로 달 뒷면 착륙에 성공한 데 이어 올해 초 화성에 직접 착륙선을 보내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우주 스타트업 생태계 구축에도 적극적이다.
△일본, 소행성 탐사 선두=일본이 우주발사체 자립에 성공할 때는 자체 기술은 물론 미국의 도움이 컸다. 일본은 지난해 말 지구에서 3억 ㎞나 떨어진 소행성인 ‘류구’의 토양 시료 100㎎을 지구로 가져올 정도의 기술력을 갖췄다. 지금도 다른 소행성 탐사를 진행하고 있다. 소행성 탐사만큼은 미국에 맞먹거나 오히려 앞설 정도다. 요시카와 마코토 일본우주항공연구개발기구(JAXA) 하야부사2 프로젝트 미션 매니저는 “소행성은 미래의 우주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 지구와 충돌할 때 입게 될 큰 피해를 막기 위해서도 탐사가 필요하다”며 소행성 탐사의 이유를 밝혔다. 일본은 1990년 달 탐사선을 처음 보냈고 2003년 소행성 탐사선, 2006년 태양 탐사선, 2010년에는 금성과 태양 반대편 탐사선을 보냈다. 위성 정보 활용 등 우주 스타트업 생태계도 꽤 갖춰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