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내칼럼

[만파식적] 역사 결의


중국의 모든 지폐에는 마오쩌둥의 얼굴이 들어 있다. 마오가 중국에서 성인(聖人) 반열에 올라 있다는 것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그런 마오가 1976년 사망하자 덩샤오핑 치하의 중국 공산당은 고민에 빠졌다. 마오의 주도로 중국 전역에 피바람을 몰고 온 문화대혁명을 극복해야 하지만 이는 마오는 물론 국가 정통성에 대한 부정으로 이어질 수 있었기 때문이다. 1981년 공산당 11기 6중 전회에서 통과된 ‘건국 이래 당의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는 두 모순된 과제를 절충한 결과였다. ‘역사 결의’는 ‘문혁은 마오의 착오에 의한 운동이었으며 반동 집단이 이를 이용해 당·국가·인민에게 엄중한 재난을 불러온 내란’이라고 정리했다. 마오에 대해서는 ‘말년에 엄중한 착오를 범했으나 일생을 통해 보면 공적이 첫 번째요 착오는 두 번째’라고 공식 평가했다.





이른바 ‘역사 결의’는 마오 시절인 1945년에도 있었다. 6기 7중 전회를 통과한 ‘약간의 역사 문제에 관한 결의’는 혁명을 주도한 마오의 영도적 지위를 인정하고 마오의 노선에 당 지도 사상의 지위를 부여했다. 또 과거 좌편향적 교조주의가 미친 폐해를 지적해 마오의 정적인 왕밍을 제거하는 수단으로 활용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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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번째 역사 결의가 임박했다. 중국 공산당이 다음 달 열리는 19기 6중 전회에서 ‘당의 100년 분투에 관한 중대한 성과와 역사적 경험에 관한 결의’를 심의한다고 인민일보가 보도했다. 홍콩 밍보는 “중국 공산당 100년 역사를 시진핑 집권 전과 후로 나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중국은 2018년 주석 연임 제한 규정을 폐지해 시 주석 종신 집권의 길을 열었다. 중국은 초등학교부터 대학원까지 모든 교재에 ‘시진핑 사상’을 넣기로 하는 등 시 주석 우상화 작업도 벌이고 있다.

과거 두 번의 역사 결의는 전(前) 지도자의 과오를 지적해 ‘현재 권력’을 공고히 한다는 공통점을 지녔다. 이번 역사 결의도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시 주석은 세 번째 역사 결의로 장기 집권의 길을 다지겠지만 그 역시 네 번째 역사 결의를 통해 잘못을 지적받는 권력자가 될 수밖에 없다. 역사가 권력 강화의 도구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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