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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당신이 이 음악의 작곡가입니다





예술이 세상을 바꿀 수 있을까. ‘그것이 예술의 힘’이라 말하는 이도 있을 테고, ‘그건 취미요 취향일 뿐’이라는 사람도 적지 않을 것이다. 저마다 의견은 다르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이 있다. 음악이, 미술이, 누군가의 연기가 특정 시대를 투영하고, 그 반영의 결과물이 많은 이들에게 다양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는 점이다. 언젠가 만난 한 가곡 작곡가는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예술이 세상을 바꾸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우리 삶을 비추고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를 만들어 줄 수는 있겠죠.”



지난 20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공연을 관람하면서 그의 말이 다시 떠올랐다. 바이올리니스트 임지영을 비롯해 서른네 명의 연주자가 뽑아내는 선율은 공연장을 순식간에 무겁고 어두운 공기로 채웠다. 분명 익숙한 멜로디였지만, 우리가 아는 원곡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에 관객들은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했다. 이날 연주된 곡은 ‘사계 2050’. 이탈리아 작곡가 안토니오 비발디의 ‘사계’에 한국의 기후 예측 데이터를 결합해 인공지능(AI)으로 편곡한 2050년 버전의 ‘불확실한 사계’다. 봄과 여름의 새의 지저귐을 묘사한 선율은 사라지고 풍성한 수확을 축하하던 가을에는 불협화음이 난무한다. 원곡에 없던 요란한 타악기의 음향까지 더해지니 ‘생(生)의 기운’ 넘쳐 흐르던 ‘사계’가 지구를 향한 장송곡처럼 들려왔다. 그 음산함에 연주자인 임지영조차 “처음 데모 파일을 들었을 때 3초도 지나지 않아서 끄고 말았다”고 할 정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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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무대는 기후 위기 대응을 위한 글로벌 프로젝트의 하나로 기획됐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지구상 곳곳에 다가올 사계절은 300년 전 비발디가 아름다운 곡으로 표현해 낸 사계와는 확연히 다를 것이다. 가사 없는 ‘사계 2050’이 ‘환경을 보호하자’는 직접적인 구호를 담고 있진 않다. 그러나 익숙했던 것의 부재와 음산한 편곡은 녹아내리는 빙하 사진과 불타는 산림 영상 이상의 강렬한 메시지를 전달하기에 충분했다.

1부에서 충격의 미래를 귀로 접한 관객들은 2부에서 다시 비발디의 오리지널 버전 사계를 들었다. 재앙과 낙원을 오간 이들은 공연장을 나서며 어떤 생각을 했을까. 적어도 이 불길한 상상이 마냥 상상이 아니라는 점, ‘사계 2050’이란 곡을 써 내려가는 작곡가는 AI가 아닌 바로 나, 그리고 우리 모두라는 사실을 인지했을 것이다.

‘예술’ 하면 여전히 현실 이슈와는 동떨어졌다는 평가가 따라붙곤 한다. 그러나 이날 연주된 100분 간의 음악은 우리에게 시대의 핵심 화두를 던지기에 충분한 것이었다. 공연은 끝났다. 이제는 예술이 던진 화두를 곱씹고 사유할 ‘우리의 시간’이다.


송주희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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