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한국석유공사에 추가 재정을 투입하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공사의 독자 생존이 불가능해 적정 수준의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는 정부 자문기구의 권고마저 외면했다. 공사의 재무 상황이 최악으로 치닫고 있지만 해외 자원 개발에 찍힌 ‘적폐’ 낙인은 좀처럼 지워지지 않고 있다. 글로벌 각국이 신자원 전쟁에 돌입했지만 문재인 정부는 유일한 해외 석유 개발 공기업의 생존도 탐탁지 않은 모습이다.
3일 관계 부처에 따르면 기획재정부는 내년 석유공사 출자 예산으로 총 705억 원을 책정했다. 해외 유전 개발 사업과 비축 사업 출자 명목으로 각 323억 원, 382억 원이 투입될 예정이다. 출자 예산 총액은 전년 대비 2%(15억 원) 늘었지만 본예산 기준 전체 예산 증가 폭(8%)을 크게 밑돈다.
이는 자원 개발 공기업에 대한 적정 수준의 재정 지원을 검토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의견을 반영하지 않은 것이다. 앞서 정부는 경영난에 빠진 자원 개발 공기업의 정상화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민간 전문가들로 구성된 ‘해외 자원 개발 혁신 태스크포스(TF)’를 발족시킨 바 있다. 자원 개발 TF는 정부가 고수해온 ‘선(先)구조조정 후(後)지원’ 원칙을 뒤집고 구조조정과 자금 지원이 병행돼야 한다는 내용의 권고안을 지난 4월 정부에 제출했다. 석유공사처럼 자체 재무 개선이 불가능한 기업에 구조조정을 떠맡기며 방관하는 사이 재무구조가 악화할 뿐 아니라 공기업 본연의 기능까지 상실할 수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정부가 재정 지원을 주저하는 동안 석유공사의 재무구조는 빠르게 나빠지고 있다. 석유공사는 2017~2019년 총 1조 2,908억 원의 영업이익을 냈지만 이자 비용과 자산 손상 규모가 이를 웃돌아 같은 기간 1조 9,812억 원의 누적 순손실을 기록했다. 영업외비용에 발목 잡힌 상황이 이어지면서 지난해는 창사 이래 처음으로 완전자본잠식에 빠졌다. 이에 TF의 권고안을 받은 산업통상자원부는 재정 당국과 700~800억 원 수준의 이자 비용을 지원하는 방안을 논의했으나 결국 추가 지원 없이 예년 수준의 예산만 편성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