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청년들이 공무원, 공기업 등 안정적인 직장만 선호해 안타깝습니다. 울산과학기술원(UNIST)에서 인재를 육성하고 청년 창업을 활성화해 지역 경제를 살리는 새로운 혁신 모델을 수립해 주세요.”
‘소재 산업 입국’을 외쳐온 이준호(75) 덕산그룹 회장이 UNIST에 300억 원을 기부하는 통 큰 결정을 내리며 한 말이다. 그는 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기부 약정을 체결하며 “기부금을 자양분 삼아 언젠가 UNIST에서 창업한 기업이 울산 지역에서 대규모로 채용을 한다는 소식을 듣고 싶다”고 소회를 피력했다.
이는 서울경제가 지난 9월 ‘제1회 대학 기업가 정신 토크 콘서트’ UNIST편에서 강조했던 대학의 기업가 정신 고양과 기술 사업화 활성화와 같은 맥락이다. 그는 “학문적으로 기술 연구를 하는 것도 어렵지만 시장에서 제품을 출시해 성공하긴 더 힘들다”며 “학생들이 실전형 교육을 통해 자유롭게 창업을 꿈꾸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기대했다. 청년들이 좋아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남과 다르게 하면 기회가 있다는 게 그의 조언이다.
이 회장은 그동안 그룹 인력의 30%를 연구개발(R&D)에 투입해 왔다. 덕분에 계열사 중 덕산하이메탈은 반도체 패키징 소재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다. 덕산네오룩스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소재를 개발한다. 덕산넵코어스는 최근 발사된 한국형 발사체(누리호)에 항법장치를 공급했다. 그는 “남보다 앞서는 기술개발, 혁신을 늘 추구해 왔다”며 “소재 강국인 독일, 일본에는 없는 특허 틈새시장만 노려서 1,000여개의 특허를 냈다”고 설명했다.
그는 “UNIST라면 울산에 AI, 바이오 등 신산업 창업 붐을 일으켜 도시의 산업 체질을 바꾸고 노벨상도 배출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고 기부를 결심했다”고 털어놨다. UNIST가 반도체소재부품대학원을 만드는 모습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는 얘기도 했다.
UNIST는 이번 기부금으로 학생 창업 등을 지원하는 ‘챌린지 융합관’을 건립할 방침이다. 이곳은 ‘과학기술계 방탄소년단(BTS)’으로 성장할 미래 인재를 키우기 위한 창업 공간으로 꾸며진다. 과학기술계에서 BTS 같은 청년 스타를 키우자는 이용훈 UNIST 총장의 평소 소신을 반영한 것이다.
이 총장은 “도전과 혁신으로 반도체 소재 산업을 이끌어온 이 회장의 의지를 UNIST가 이어갈 것”이라며 “미래 과학기술 인재들이 마음껏 도전하며 지역과 국가의 미래를 바꿀 혁신을 만들어 나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다짐했다.
이날 협약식에 참석한 임혜숙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산업계의 기부는 지역사회가 인재를 양성하고 그 인재들로 지역이 혁신하고 발전하는 선순환의 고리를 시작한다는 큰 의미를 갖고 있다”며 “덕산그룹의 기부금은 UNIST가 세계 대학으로 발돋움하고 지역 혁신을 추진하는 데도 크게 기여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한편 올해 개교 12주년을 맞은 UNIST는 현재까지 교원과 학생 창업기업이 각각 57개, 69개 에 달한다. 이들 기업가치는 약 6,870억 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