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마와 싸우다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난 소방관들은 국립묘지에 묻히지 못하죠. 산재로도 인정을 못 받습니다. 유가족들은 대부분 힘든 생활을 하게 되죠. 다니던 학교를 그만두고 취업 전선에 뛰어드는 자녀들도 많습니다. 이 자녀들에게 ‘우리 아버지는 소방관’이라는 자긍심을 심어줬으면 했습니다.”
지병으로 숨진 동료 소방관을 위한 추모 시를 담아 시집을 낸 민병문(59) 소방위가 7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지병으로 돌아가신 분들을 항상 마음에 담고 있었다”며 발간 이유를 밝혔다.
현재 과천소방서 과천119안전센터에 근무하고 있는 민 소방위는 30년 동안 화재와 구급 현장을 쫓아다닌 베테랑 소방관이다. 내년 6월이면 정년퇴직한다. 그런 그가 지난 6월 소방관 생활을 하며 틈틈이 머릿속으로 써왔던 시들을 ‘황색선을 넘나들며’라는 시집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시집에는 누군가의 부름을 받으면 넘지 말아야 할 중앙선인 ‘황색선’까지 넘나들며 달려가야 하는 소방관들의 애환을 담았다.
시집 수익금은 전액 지병으로 숨진 동료 유가족 자녀들을 위한 장학금으로 쓰인다. 가슴 아픈 계기가 있었다. 시집 중에는 ‘국립묘지가 저긴데…’라는 추모 시가 있다. 마지막까지 화마와 싸우다 산화하기를 바라는 동료가 2013년 암으로 세상을 뜨자 쓴 시다.
이 동료 소방관이 암으로 판정을 받은 후 화재 현장만 가면 자꾸 불 속으로 뛰어들려 했다고 한다. 순직해야 유가족 생계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을 것이라는 게 민 소방위의 생각이다. “불을 끄다 사고를 당하면 국립묘지에 안장되고 부조도 소방청 차원에서 나옵니다. 지병으로 숨지면 아무것도 없죠. 고인이 자꾸 불길 속으로 들어가려 했던 이유일 겁니다.”
실제로 졸지에 가장을 잃은 유가족들은 생활고에 시달렸다. 부인은 생계를 위해 공장 일용직으로 취직했고 아들 역시 대학을 휴학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유가족 자녀들은 소방차만 지나가도 아빠를 그리게 된다”며 “아빠와 함께 근무했던 소방관이 장학금을 줬다고 하면 자녀들도 자긍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민 소방위는 시집을 사는 지인들에게 딱 한 권만 구입하라고 한다. 그래야 의미가 있다고. 통장에 1만 3,500원이라는 숫자가 유난히 많이 적힌 이유다. 어쩌다 수십만 원을 내놓는 경우도 있지만 극히 소수다. 당연히 모인 금액이 많지 않다. 다섯 달 동안 통장에 찍힌 누적 금액은 약 830만 원. 두 차례 장학금으로 전달돼 지금 잔액은 630만 원 정도다. 그는 “얼마 전 위암으로 세상을 뜬 동료와 또 한 명의 소방관에게 100만 원씩 지급했다”며 “자녀들에게 한 학기 등록금이라도 주고 싶지만 아직 여유가 안 돼 이 정도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설명했다. 장학금을 효율적으로 주기 위해 1인 재단 설립도 추진하겠다는 생각이다.
아쉬움도 있다. 더 많은 유가족에게 장학금을 주고 싶어도 잘 알려지지 않아 신청하는 사람이 별로 없다. 그는 “전국적으로 지병으로 숨진 소방관의 현황을 알고 싶었지만 본청에 요청해도 개인 정보 문제를 들어 알려주지 않는다”며 “일일이 소방서를 다니며 대상자를 찾다 보니 정말 급한 유가족들에게는 지급하지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는 앞으로 지원 대상을 더 확대하겠다고 밝혔다. 민 소방위는 “소방관에 대한 지원이 어느 정도 이뤄지면 어렵게 사시는 분들을 돕는 일에도 나설 것”이라며 “2집, 3집으로 시집 발간 준비를 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