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 인상과 기업규제 3법, 그리고 탈원전. 현 정권이 추진한 이 같은 정책에 정부와 산업계가 엇박자를 낸 배경에는 ‘속도’에 대한 사회적 합의 부재가 컸다. 현실을 고려하지 않는 정부의 과속 정책 추진에 산업계는 “속도만이라도 조절해달라”고 ‘간청’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최근 산업계는 또다시 정부에 이런 간청을 거듭했다. 정부가 오는 2030년 국가온실가스감축목표(NDC)를 40%까지 상향하면서다. 기존보다 무려 두 배 가까운 수준으로 급격히 올라간 정부의 탄소 중립 목표에 ‘정책 과속 스캔들’이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쏟아져 나온다.
온실가스 감축에 대해 업계에서는 일제히 “취지에 공감하지 못하는 게 아니다”라고 입을 모은다. 다만 “선진국보다 빠른 속도로 추진하겠다는 정부의 목표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감당하는가”의 문제다.
실제로 반도체, 정유·화학, 자동차, 철강, 배터리 등 기업들은 업종을 불문하고 탈(脫)탄소를 실현하고 있다. 자체적으로 수백억 원을 투자해 수소기술 개발·확보에 나서는 것은 물론 폐플라스틱·폐배터리 등 폐기물에서 원료를 추출하는 사업에도 속속들이 뛰어들고 있다. 국내 주요 대기업들이 최근 2년간 줄인 온실가스 배출량은 4,624만 톤에 달한다는 조사 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세운 목표치를 달성하려면 10년간 이들 기업은 온실가스 배출량을 2억 톤 가까이 더 줄여야 한다. 제조업 비율이 높은 한국 산업계로서는 부담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해마다 줄여야 하는 온실가스 비중도 미국이나 유럽연합(EU)에 비해 훨씬 크다.
NDC 상향과 ‘2050 탄소 중립 시나리오’가 이미 확정된 만큼 기업 사이에서는 “결정에 따르는 것 외에 방법이 없다”는 한탄이 나온다. 막대한 자본을 투입해 친환경 기술 확보에 힘써온 기업들이지만 과속 정책을 따라가기에는 한계가 분명하다. 기업들이 경쟁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온실가스 감축을 위한 기술을 연구개발할 수 있도록 충분한 지원이 반드시 뒤따라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