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컬렉터의 방을 훔쳐보다…왜 그 그림인가요?

컬렉터 시각에서 구성된 '매니폴드:사용법'

유진상 교수 "그림 사는 확실한 이유 매뉴얼"

예경, 예비전속작가 지원의 우수화랑·작가 전시

유용선(왼쪽)의 회화와 임지빈의 베어브릭 설치작품을 볼 수 있는 '매니폴드:사용법' 전시 전경.유용선(왼쪽)의 회화와 임지빈의 베어브릭 설치작품을 볼 수 있는 '매니폴드:사용법' 전시 전경.




젊은 뮤지션인 그는 복잡하고 위선적인 세상에 대해 노래하지만, 실제 삶에서는 대단히 밝고 낙천적이다. 성격은 미술품 수집에서도 드러난다. 친숙한 만화·애니메이션 혹은 광고의 한 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유용선의 그림이 방에 걸려 있다. “단순하지만 굵은 윤곽선에 의해 강조된 사물과 배경은 분명하면서 복합적인 그의 사고방식과 연관돼 있다고 느낀다. 색채는 열정으로 가득차 있고 화면은 역동적이다. 나는 이런 그림이 좋다.” 임지빈의 작품 소재인 베어브릭은 그의 성장기를 함께 보낸, 언제나 열광하게 만드는 존재다. “커다란 베이브릭 인형은 커다랗게 부풀려져 있거나 혹은 사회 속에서 유독 소외감을 느껴온 자아를 응시하는 것과도 같다. 한편으로는 베어브릭 특유의 친숙함이 나를 사로잡는다.”




유용선 '파이스 스타스 호텔 식당 주방'유용선 '파이스 스타스 호텔 식당 주방'


그림을 좋아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좋아하는 그림을 사서 집에 걸어둘 정도라면 그 이유는 더욱 확고할 것이다. 하지만 이를 분명한 언어와 문장으로 표현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그림 한 점 사고 싶은데 어떤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 망설여지는 이들을 위해 ‘왜 그 그림이 좋은 그림인지’를 설명해 주는 매뉴얼 전시가 열리고 있다. 예술의전당 한가람디자인미술관에서 오는 17일까지 열리는 ‘매니폴드:사용법’이다.



전시는 취향이 다른 컬렉터 9명의 방으로 구성됐다. 비혼주의를 선언하고 독신자의 길을 걷는 한 컬렉터는 곽상원의 그림을 걸었는데 작품 속 인물의 “파란 모자가 지평선의 하늘과 겹쳐져 마치 유령이 걸어가는 것처럼” 보인다. 그림 앞에 놓은 김윤수의 작품은 솟구치는 파도를 한 웅큼 집어다 놓은 듯한 형상이다. 파란 비닐봉지를 발 모양으로 잘라 수백 장 포개놓은 공들인 작품인데 “얇은 시간의 단면들을 쌓아올린 순수한 운동성이 깨달음을 시각화 한 것 같기도” 해서 택했다. 한 미니멀리스트의 방은 기하학적 완벽함과 빛·색으로 이뤄진 정정주의 작품, 하얀 접시 위에 놓인 빨간 사과가 강렬한 기호 같은 장은의의 그림이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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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윤수의 '파도' 너머로 곽상원의 '마이 랜드(My Land)'가 보이는 '매니폴드:사용법' 전시 전경.김윤수의 '파도' 너머로 곽상원의 '마이 랜드(My Land)'가 보이는 '매니폴드:사용법' 전시 전경.


회화 그 자체를 좋아하는 수집가의 방은 좀 더 화려하다. 붓질의 흔적과 찐득한 물감이 생생하게 느껴지는 안상훈, 전희경의 작품은 “낙서같기도 하고 신체의 일부분 같기도 한 선들이 화면을 뒤덮어” 때로는 기억을 떠올리게 하고 신경을 자극하기도 한다. 문학을 사랑하는 어느 독서가는 익숙하지 않은 왼손으로 그리는 윤상윤, 버려진 합판 위에 그림을 그리고는 배경을 뜯거나 뭉개기도 하는 박광선 등 일부러 불편함과 힘겨움을 추구하는 이들의 작품을 선택했다. 문학 못지 않게 세상을 바라보는 색다름이 있기 때문이다. 아련한 옛 기억에 사로잡혀 있는 이는 하얗고 매끈한 피부의 도자기 인형을 그린 최지원, 도자기처럼 매끈한 몸에 섬세한 청화문양의 동물이 등장하는 이우림, 물에 비친 풍경을 그리는 양경렬의 작품들을 걸었다. 이 그림들이 “과거와 현재, 미래의 시간을 한데 보여주고…(반짝임이라는 공통점이) 어쩌면 우리 세계의 비밀을 가장 잘 드러내고 있는 것 같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호기심 많고 사색적인 컬렉터는 기계로 출력한 듯한 이미지를 손으로 그리는 송민규, 안경·껌·두루말이 휴지 같은 일상용품을 다시 보게 만드는 개념미술가 로와정의 작품을 곁에 뒀다.

전희경의 ‘연속적 블루’ 등이 전시된 ‘매니폴드: 사용법’ 전시 전경.전희경의 ‘연속적 블루’ 등이 전시된 ‘매니폴드: 사용법’ 전시 전경.


어느 독서가 컬렉터가 선택한 것으로 설정된 윤상윤의 작품들. 그는 일부러 왼손을 이용해 불편하게 그림을 그린다.어느 독서가 컬렉터가 선택한 것으로 설정된 윤상윤의 작품들. 그는 일부러 왼손을 이용해 불편하게 그림을 그린다.


이번 전시는 문화체육관광부 산하 예술경영지원센터(대표 문영호)가 진행하는 ‘예비 전속작가제 지원’사업을 통해 선정된 7개의 우수화랑과 그들의 19명 전속작가를 집중적으로 소개하기 위해 마련됐다. 지난 2019년부터 운영된 예비 전속작가제 지원은 예경이 전속작가를 확보한 갤러리에게 매달 일정금액의 전속작가 창작활동비와 홍보 비용을 지원하며 작가와 화랑의 상생을 마련해준 사업이다. 여러 갤러리를 모아놓은 전시가 자칫 아트페어 형식이 되기 십상이었으나, 기획을 맡은 유진상 계원예대 교수가 기존에 없던 ‘컬렉터의 시각’으로 가상의 수집가를 설정해 전시를 꾸몄다. 기존의 전시들은 작가와 큐레이터, 갤러리 중심으로 기획된 ‘공급자 중심’의 경향이 컸다. 유진상 교수는 “미술품 소장 문화가 확산되고 있지만 정작 ‘그 작품을 왜 좋아하는가’라는 물음 앞에 멈칫거리는 컬렉터들을 위해 ‘왜 이 그림을 좋아하는가에 대한 이유’가 적혀있는 매뉴얼 같은 전시”라며 “미술품이 좋아서 사는 경우도 있고 투자목적으로 구입한 경우도 있겠으나 미술품을 구입하는 데는 설명가능하고 분명한 이유가 있다는 인식을 확산시키고자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실제 컬렉터의 방 같은 분위기를 내기 위해 커튼을 활용했고, 작품 안내판도 없앴다”면서 “장기적으로는 이같은 컬렉터 교육형 전시를 통해 그림을 왜 샀고, 왜 걸었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담론으로 성장할 수 있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전시는 갤러리의 지원과 공공기관의 후원 속에 작가가 안정적으로 작업하고, 그 결과물인 작품들을 관객이 감상하고 소장도 하는 미술시장의 선순환 생태계를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한발 더 나아가 공공기금이 싹 틔운 작가를 기업이 더 키우기로 했다. 한국메세나협회와 협력한 ‘메세나 1기업 1미술작가 지원사업’을 통해 메트라이프생명, 벽산엔지니어링, CJ문화재단 등이 각각 작가를 선정해 3년 동안 매년 일정금액을 지원하기로 했다.


글·사진=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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