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경골프 골프일반

“삶과 골프의 가장 큰 적은 두려움…맞서 싸워라”

김세영 LPGA 투어에 에세이 기고

“갈림길마다 아버지의 조언 큰 힘”

이번주 펠리컨 챔피언십서 타이틀 방어

김세영. /사진=로이터연합뉴스김세영. /사진=로이터연합뉴스




세계 랭킹 4위 김세영(28·메디힐)이 10일(한국 시간)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인터넷 홈페이지에 ‘두려움을 향해 달려가라’(Run Toward Your Fears)라는 제목의 글을 기고했다. 김세영이 인터뷰로 구술한 내용을 LPGA 투어 측이 글로 재구성했다. LPGA 투어 인터넷 홈페이지에 한국 선수의 에세이가 실린 건 지난해 고진영(26), 이정은(25), 유소연(31)에 이어 네 번째다.



김세영은 글을 통해 “골프는 두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이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의 조언이 큰 힘이 됐다”고 했다. 그는 “아버지는 ‘본능에도 불구하고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상대와 맞서야 한다. 골프 대회에서도 그렇듯, 싸움에서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두려움에 져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셨다”며 아버지의 가르침에 감사함을 전했다.

김세영은 2015년 LPGA 투어 첫 경기를 치렀을 때의 불안감과 이를 극복한 과정도 소개했다. 김세영은 “당시 첫 대회에서 컷 탈락을 한 후 아버지에게 전화해 ‘낯선 미국이 너무 힘들다. 한국에 다시 돌아갈까 한다’고 말했다”며 “가만히 듣고 있던 아버지가 ‘무섭니? 일주일만 더해 보고 다시 얘기하자’고 말했다. 그건 두려움에 맞서라는 뜻이었다”고 회상했다. 김세영은 이후 두 번째 대회인 퓨어실크-바하마 LPGA 클래식에서 우승을 차지했다.

이번 시즌까지 7년을 뛰는 동안 LPGA 투어 통산 12승을 거둔 김세영은 “데뷔 첫해 신인상을 수상하고 지난해에는 첫 메이저 우승과 올해의 선수상도 수상했다. 이번주에는 타이틀 방어전도 치른다”며 “이 모든 것을 겪는 내내 늘 아버지의 말씀을 생각했다”며 아버지의 조언으로 글을 마무리했다. “잡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두려움을 향해 달려가라. 대담한 자 앞에서 두려움은 항상 사라지거든.”

김세영은 11일부터 나흘간 미국 플로리다주 벨에어의 펠리컨 골프클럽(파70)에서 열리는 펠리컨 챔피언십(총 상금 175만 달러)에서 타이틀 방어전을 치른다.

김세영. /사진=AFP연합뉴스김세영. /사진=AFP연합뉴스


다음은 김세영의 에세이 전문.

나는 9살에 골프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골프를 좋아하셨는데 어느 날 내가 많은 시간을 보내게 되는 집 근처의 골프 연습장에 나를 데리고 가셨다. 이후로 나는 집 안에서도 항상 클럽을 휘둘렀다. 하지만 골프는 내게 있어 유일한 운동이 아니었다. 처음 시작한 운동도 아니었다.

처음 골프 클럽을 쥐었을 때, 나는 이미 제법 태권도 수련을 한 상태였다. 아버지는 집 근처에서 태권도장을 운영하는 관장님이셨다. 아버지는 나를 포함해서 많은 관원들을 가르치셨다. 다섯 살 때 나는 아버지와 함께 태권도로 신체를 단련하고 많은 기술을 익히며 시간을 보냈다. 12살 때는 이미 태권도 3단이었다.



태권도를 통해 나는 많은 것들을 배우며 더 나은 골퍼가 될 수 있었다. 태권도의 동작들은 골프 스윙 동작으로 잘 옮겨왔다. 유연성, 지렛대의 원리, 균형 감각, 적절한 순간에 스피드를 내는 법 그리고 공을 때릴 때 자신을 통제하는 것 등 골프와 태권도는 공통점이 많았다. 내 몸을 알고 올바른 타이밍과 위치의 중요성을 이해하는 것은 드라이브 샷을 페어웨이로 보내거나 발로 송판을 격파하는 데 있어 필수적이다. 하나를 익힘으로써 다른 하나는 이해가 쉬워진다. 태권도에서는 힘을 내기 위해 모든 근육을 사용하는 것을 강조하며, 가능한 한 점에 모든 힘을 집중한다. 모든 근육과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해 정지된 공의 뒷면에 최대한 많은 힘을 가하는 골프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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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내게 가르쳐 주신 다른 모든 것들이 감사할 것이라는 점을 알지 못했다. 예를 들어, 나는 사람들 앞에서 시범 공연을 했었다. 승급 심사나 시범 공연에서 나는 항상 친구들, 선생님들, 그리고 관중들 앞에 서야만 했다. 그래서 골프 대회에 참가했을 때 나는 이미 많은 사람들 앞에 서는 그 느낌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다른 어떤 것보다도 스포츠와 인생에서 직면할 가장 큰 적이 두려움이라고 가르쳐 주신 것이 더 값졌다. 무술에서 나를 공격하는 사람은 나의 적이다. 하지만 진짜 적은 두려움이다. 아버지는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본능에도 불구하고, 너는 가장 두려워하는 것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상대와 맞서야 한다. 골프 대회에서도 그렇듯, 싸움에서 질 수도 있다. 하지만 두려움에 져서는 안 된다.”

10대 때 나는 골프에 전념했다. 하지만 여전히 내가 프로 골퍼가 되고 싶은 지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대회에서는 기량을 제대로 발휘하지 못했다. 태권도에서 배운 호흡이나 집중, 통제와 같은 기술들을 많이 사용했지만 중요한 순간에는 압도당하기 일쑤였다.

어린 시절 태권도를 하는 김세영.어린 시절 태권도를 하는 김세영.


고등학교 1학년 때 아버지는 나를 부르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세영아, 네가 뭘 하고 싶은지 결정해야 해. 재미로만 골프를 하고 싶어도 괜찮아. 하지만 다른 진로를 찾을 수 있도록 학교 생활에도 집중할 필요가 있어. 만약 네가 프로 골퍼가 되고 싶다면 그것도 괜찮아. 하지만 두려움을 극복하고 압박감 속에서 플레이 하는 법을 배워야 해.”

나는 부모님이 어느 쪽이든 나를 지지해 주실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었다. 그게 내게 필요한 전부였다. 나는 골프에 몸을 던졌다. 그리고 16살 때 한국 여자 아마추어 선수권 대회에서 최연소 우승자가 됐다. 2년 후 나는 프로로 전향했고, KLPGA 투어에서 5승을 했다. 그 중 두 번은 연장전 끝에 거둔 우승이었다. 그때 나는 긴장을 억제하고 두려움을 물리칠 수 있었다.

그 후에 2015년에 LPGA 투어에 출전할 자격을 얻었다. 그것은 새로운 불안감을 주었다. 충분히 영어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고 미국에 도착했다. 아주 잠시 동안은 말이다. 내가 그토록 판단을 잘못 한 적은 거의 없었다. 아무 것도 이해할 수 없었다. 간판을 읽을 수도, 음식을 주문할 수도, 텔레비전을 보거나 읽을 책을 찾을 수도 없었다. 로컬룰을 적은 종이는 쓸모없었고, 대회 관계자의 지시는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무슨 말인지 알아듣겠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지만 사실 난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플로리다 오칼라에서 열린 대회에 루키로서 처음으로 참가해 좋은 성적을 내지 못했다. 대회가 끝나자마자 나는 아버지에게 전화를 걸었다. “실수한 것 같아요. 여기 있는 모든 게 너무 힘들고, 내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해할 수 없어요. KLPGA 투어에 복귀할까 봐요.”

감사하게도 아버지는 내 말을 끝까지 들어주셨다. 그리고 말씀하셨다. “무섭니?” 곧바로 대답하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알았기 때문이었다. 아버지는 다시 “한 주만 더 해 보는 게 좋겠다. 어떻게 되는지 보고 그 다음에 다시 얘기하자”고 말씀하셨다.

그 다음 주 LPGA 투어 대회는 퓨어 실크-바하마 LPGA 클래식이었다. 그 2월의 일요일, 거센 바람 속에서 나는 68타를 치며 14언더파로 경기를 마쳐 에리야 쭈타누깐, 유선영 언니와 연장전에 진출했고 우승했다. 두 달 뒤에는 하와이에서 열린 롯데챔피언십에서 박인비 언니와 연장전까지 가게 됐다. 그리고 나는 내 인생 최고의 8번 아이언 샷을 쳤다. 연장 첫 번째 홀에서 공이 한 번 튕긴 뒤 홀 안으로 들어가며 이글을 잡은 것이다. LPGA 투어 첫 4개월 동안 거둔 두 번째 우승이었다.

물론 내 영어가 하룻밤 사이에 좋아지지는 않았다. 호텔에 체크인하고 식당 메뉴를 읽는 것이 여전히 어려웠다. 하지만 나는 더 이상 내 결정이 두렵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LPGA 투어에 정착했다. 2015년에는 신인상을 수상했고, 2020년에는 첫 메이저 타이틀인 KPMG 위민스 PGA 챔피언십을 거머쥐었다. 이번 주에 타이틀을 방어하는 펠리컨 위민스 챔피언십에서도 우승했다. LPGA 올해의 선수상도 수상했다. 이 모든 것을 겪는 내내 아버지의 말씀을 늘 생각했다.

“잡을 수 없다는 걸 알지만, 두려움을 향해 달려가라. 대담한 자 앞에서 두려움은 항상 사라지거든.”


김세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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