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야의 대통령 후보가 확정되면서 제20대 대통령을 향한 레이스가 본격 점화됐다.
과거의 대선 사례를 보면 후보들은 저마다 시대정신을 대표하는 구호를 내걸며 선거운동에 나섰다. 그럼 이번 20대 대선의 시대정신은 무엇일까. 먼저는 성장이다. 기본소득 등 ‘기본 시리즈’로 분배를 강조하던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도 성장을 강조하고 나섰다. 이 후보는 선거대책위원회 출범식 연설에서 “우리 사회의 극심한 갈등과 균열의 근본 원인은 저성장에 따른 기회 총량 부족과 불평등”이라며 “성장 회복으로 기회 총량을 늘려야 성별·세대·계층·지역 간 갈등이 사라진다”고 말하고 제1 공약으로 ‘성장의 회복’을 강조했다. 이 후보는 이날 연설에서 그동안 그렇게 강조해오던 기본소득과 관련해서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박정희 전 대통령의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언급하면서 “과감한 규제 합리화로 산업 재편과 신산업 진출의 길을 열겠다”고 말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최근 발표한 보고서에서 우리나라의 2030~2060년 잠재성장률이 0.8%로 OECD 최하위권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성장이 멈추면 고용과 소비도 줄면서 수요 부족으로 다시 성장률도 떨어지는 악순환에 접어들게 된다.
경제는 경쟁이 기본이다. 능력 있는 사람들이 능력을 발휘하게 해주면 경제는 활기를 띠게 돼 있다. 이를 위해 우선 공정한 경쟁이 필요하다. 경쟁이 불공정하면 힘 있는 사람이 이기지만 경쟁이 공정하면 능력 있는 사람이 이기기 때문이다. 다음으로는 자유로운 활동을 할 수 있어야 한다. 손발을 묶어 놓고서는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하지만 경쟁의 결과에는 탈락하는 사람이 생기기 마련이다. 양극화가 발생한다. 특히 우리나라는 IMF사태 이후 본격화됐던 양극화가 코로나 팬데믹을 거치면서 더욱 심화됐다. 자영업자·비정규직·여성·노인들의 소득이 크게 줄었다. 부동산 폭등으로 자산 양극화도 커졌다.
따라서 이번 대선의 두 번째 시대정신은 양극화 극복이다.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양극화’를 이번 대선의 화두로 제시했다.
양극화 극복을 위해서는 경제성장이 사회 전체의 기회 총량을 키우는 방향으로 진행되면서 일자리 확대로 연결돼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고용과 해고를 자유롭게 해주는 유연한 노동시장이 필수다. 또 사회 안전망이 확충돼야 한다. 직장에서 이탈하더라도 사회가 최소한의 기본 생계는 유지하게 해주는 시스템이 있을 때 고용과 해고가 자유로울 수 있다.
이 대목에서 기획재정부 출신 경제 관료들이 제시한 ‘부(負)의 소득세’ 개념에 주목한다. 부의 소득세란 복지와 세제를 통합해 기준점을 중심으로 많이 버는 사람(소득 기준)은 지금보다 세금을 좀 더 내고, 그보다 적게 버는 사람에게는 정부가 ‘부(마이너스)의 소득세’ 개념으로 보조금을 지급하자는 것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선 후보의 기본소득이 전 국민을 대상으로 동일하게 지급하자는 것인 반면 ‘부의 소득세’ 제도는 사회 안전망 확충 개념으로 저소득층에 지원을 집중하자는 것이다. 다만 전제가 있다.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기존 복지 시스템을 통폐합하고, 규제를 완화해 기업의 경제적 자유와 공정한 경쟁 환경을 만든다는 조건이다. 자유로운 기업 활동에서 탈락하는 경제적 약자들에게 ‘부의 소득세’라는 사회 안전망을 제공함으로써 사회적 통합을 높이는 동시에 노동 유연성 제고 등 기업 활동의 자유를 제고하는 제도 개혁인 셈이다. 주창자 중 한 사람인 변양호 VIG파트너스 고문(전 재정경제원 금융정책국장)은 “이 시스템으로 가면 좌파 진영은 의미 있는 사회 안전망(보조금)을 얻을 수 있고, 우파 진영은 규제 완화를 통해 경제적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며 “대타협의 가능성이 있다”고 밝혔다.
성장을 위한 기업 활동의 자유와 사회 안전망 확충은 동전의 양면이다. 대선 기간 동안 이를 위한 활발한 정책 토론을 통해 우리나라에 적합한 성장과 노동 유연성 및 사회 안전망 확충 전략을 마련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