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권 정책

"회계부정 제재, 의도적인 경우로 한정해야"

[4대 회계학회, K-IFRS 10년 세미나]

원칙에 대한 판단은 시장에 맡길 필요

재무제표 심사 피감리자 견해도 공시를

"기업 회계기준 제정 참여 낮아" 지적도





“회계 원칙에 대한 판단은 시장 기능에 맡기는 방향으로 개선해야 합니다.”



김이배 덕성여대 교수는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과 회계 신인도’ 세미나에서 “다양한 견해를 인정하는 IFRS 체계에 부합하게끔 감독 제도를 마련해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번 세미나는 한국채택국제회계기준(K-IFRS) 도입 10년을 맞아 한국회계학회·한국회계정보학회·한국회계정책학회·한국국제회계학회 등 국내 4대 회계학회가 공동으로 개최했다. 18명의 학계·업계 전문가들이 △재무제표 작성 △감사 △감독 △공시 △회계 신인도 등 5개 분야별로 설문·인터뷰·통계분석한 결과를 다뤘다.

이 중 ‘감독’ 부문 발제를 맡은 김 교수는 “제재 조치를 의도적인 회계 부정 사안으로 한정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기업·감사인이 IFRS를 악용한 사실이 명확한 경우에 대해서만 엄정 조치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같은 주장은 IFRS의 핵심 원리인 ‘원칙 중심 회계’와 관련이 깊다. 회계기준에서는 기본 원칙만 제공하고 구체적인 회계 처리는 기업·감사인이 알아서 하도록 열어놓는 것이 골자다. K-IFRS 도입 전에 쓰였던 일반기업회계기준(K-GAAP)이 회계 처리 규칙을 일일이 열거하던 것과 대조적이다. 그러나 학계·업계 일각에서는 금융 당국이 과거 K-GAAP 때처럼 규제 중심의 관점을 취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이 제기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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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석우 고려대 교수가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과 회계 신인도’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심우일 기자정석우 고려대 교수가 10일 서울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열린 ‘국제회계기준(IFRS) 도입과 회계 신인도’ 세미나에서 개회사를 하고 있다./심우일 기자


김 교수는 “재무제표 심사 사안에 대해 감리·피감리자 양측의 견해를 공시하게 해야 한다”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어 “감독 기구에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자문 기구를 설치해 원칙 중심 회계기준에 대한 다양한 관점을 반영하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K-IFRS 체제하에서 기업·감사인이 체감하는 감리·소송 위험도가 높아졌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전규안 숭실대 교수 연구팀이 감사인 90명과 기업 관계자 186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K-IFRS 도입 이후 감사 위험이 증가했느냐’는 질문에 대한 평균 점수는 7점 만점에 5.62점이었다.

점수가 높을수록 질문에 긍정하는 응답자가 많았다는 뜻이다. 특히 감사인(6.27)이 기업(4.97)보다 감사 위험에 더 민감한 모습을 보였다. 전 교수는 “감리가 전·후임 감사인 간 의견 차 발생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점에서 기업·감사인 관계자 중 유연하고 예측 가능한 감독을 요구하는 의견이 나온다”고 설명했다.

국내 기업들이 K-IFRS에 적응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회계 처리상 불확실성에 민감해 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왔다. K-IFRS 도입 당시인 지난 2011년에 제기됐던 우려에 비해서는 기업들이 재무제표 작성에 익숙해지기는 했으나 여전히 회계 처리 지침이 모호해 기업들이 자칫 당국 등으로부터 지적을 받을까 우려가 크다는 것이다.

송민섭 서강대 교수는 “설문 과정에서 한 실무자가 ‘만약 확신을 갖고 재무제표를 제출한들 감사인도 (이 회계 처리에) 얼마나 확신할까’라고 말했던 것이 가장 와닿는다”며 “회계 추정상 불확실성에 대해 당사자들 간 시각차를 줄일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기업들의 회계기준 제정 참여도가 저조하다는 지적도 나왔다. 송 교수 연구팀이 기업 실무자 185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회계기준원의 IFRS 의견 수렴 절차에 참여한 경험이 있다고 응답한 비율은 6.49%에 불과했다. 기준원은 IFRS에서 기준 제·개정 공개 초안이 나오면 기업·학계 등을 대상으로 이에 대한 의견을 조회한다. 회계기준에 대한 국내 산업계의 의견을 모을 핵심 창구인 것이다. 그러나 공개 초안에 대한 국내 의견 제출 건수는 평균 2.02건에 불과하다. 송 교수는 “‘원칙 중심 회계가 너무 이론적이라 실무 지식 단위에서 논하기 겁난다’는 답변도 있었다”며 “좀 더 자유로운 의견 수렴 통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심우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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